경시청 다카이도서 소속 형사였던 '진자이 아키라'는 얼마 전 발생한 변호사 부부의 사건이 사고사를 가장한 타살이라는 느낌을 받고 파트너인 '히와라 쇼코'와 함께 변호사 부부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노부부가 차고 있던 명품시계가 장물로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해 범인의 주소와 연락처를 파악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친 덫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로 인해 파트너이자 좋아하는 감정을 품고 있었던 쇼코가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이성을 잃은 진자이는 쇼코를 쐈던 범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하게 만들었고 그날이 기점이 되어 진자이는 도망자 신세에서 실종자로, 이제는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어 그렇게 9년 동안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며 쇼코를 죽음으로 몰았던 진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힘들뿐더러 9년 전 쇼코를 죽음으로 몰았던 조직폭력단은 해체되어 범인의 실체를 찾을 길 없는 시점에 이른다.
모든 것이 절망스럽고 이제 더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진자이에게 9년 전 자신의 상사였던 '기자키 헤이스케'가 나타나 진자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9년 동안 절망의 그늘에서 쇼코를 죽였던 진범을 찾았지만 무엇 하나 이뤄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형사에서 노동자로 전락해버린 비루한 감정들에 시달렸던 진자이는 기자키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후생노동성 마약단속반 소속인 '미즈키 쇼코'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WD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사업체로 위장하고 있지만 시중에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하쿠류 노보루'를 구속하기 위해 경찰 신분은 아니지만 그들을 속일 수 있는 경찰교육을 받았던 진자이의 도움이 필요했고 이에 다시금 형사의 본능을 느낀 진자이는 쇼코의 지시를 받으며 하쿠류 노보루에게 마약을 받아 판매하는 푸셔 '이사'에게 접근하게 된다.
이사의 신뢰를 얻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와 함께 한 팀이 되어 마약 판매를 시작하게 된 진자이는 평범한 주부, 회사원, 학생에게 마약을 판매하며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마약을 끊어내지 못한 채 계속되는 악순환을 목격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그런 자책감 때문에 진자이는 이사가 마약을 받는 하쿠류에게 접근해 하루라도 빨리 그를 체포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서두르다가는 교묘한 하쿠류를 영영 놓치게 될까 봐 조바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통스러운 마약 판매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하쿠류가 받는 미국 루트가 막혀 다른 루트를 찾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쇼코와 하쿠류를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기존에 접했던 '가와이 간지'의 소설들은 살인사건에 어떤 사연과 트릭이 숨어 있는지 궁금해 조바심이 났다면 그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스노우 엔젤>은 '묵시록적 누아르'라는 예고 때문에 '유즈키 유코'의 <고독한 늑대의 피>가 연상되었고 초반에 진자이의 사연과 기자키, 미즈키 쇼코의 등장까지는 굉장한 몰입력을 선사해 빨려 들듯 읽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읽다 보면 예상되는 진자이가 마약 밀수업자인 하쿠류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마약 세계에 입문하고 그 후 일어나는 비스무리한 일련의 과정과 결국엔 마지막에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의 내용이 너무 뻔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과 그보다 파트너였지만 애정을 느꼈던 쇼코의 죽음에 얽힌 복수조차 해보지 못하고 '팽'당하게 될까 봐 두려워 그때부터는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즈키 유코의 소설과 영화 신세계, 무간도가 너무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었던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앞서 보았던 소설이나 영화의 내용이 비슷한 단계를 밟았기에 차마 진자이가 같은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가슴 아파 보지 못하겠던 게 독자의 마음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독자로서 진자이에게 너무 과하게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여하튼 그런 우려와 조바심과 가슴 졸임의 복합된 기우 때문에 애써 더디 읽던 나로서는 비슷한 과정을 밟지 않고 오로지 가와이 간지만의 누아르를 완성시킨 <스노우 엔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껏 읽었던 그의 소설들도 유독 기억에 선명하게 남고 재미있었지만 <스노우 엔젤>은 특히 가와이 간지의 역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