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이 끝나면 유학 갈 생각이었기에 박중위는 심심할 정도로 따분한 마을로 군입대를 자청하며 무료한 시간에 유학 준비를 하였고 그렇게 제대를 6개월 앞둔 어느 날 읍내에서 초소가 있던 마을로 들어오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 박중위는 옆자리에 앉은 연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학창 시절 좋아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 첫사랑과 닮은 연희에게 첫눈에 반한 박중위는 그날부터 대놓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지만 어린 나이 홀로 고아가 되어 삼촌에게 의지하며 조만간 떠날 박중위의 사랑이 가볍다 생각했던 연희는 오랜 박중위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는다. 무엇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할 일 없이 살아왔던 박중위는 삼촌을 매수해 연희를 강압적으로 취하지만 그 후 복수하듯 연희를 매정하게 버려버린다.
사촌누나였지만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후는 자신이 박중위가 제공하는 라면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누나가 나쁜 일을 겪지 않았을 거란 죄책감에 박중위의 전역 하루 전날 그를 칼로 찌르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산꼭대기에 위치한 천산 수도원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후는 모두가 형제인 관계에서 성경을 읽고 필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게 되었고 점점 자신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군사정권 아래 고위급 간부였던 남자 한정효는 아내의 죽음을 겪으며 천산 수도원을 찾게 되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교회사 차동연의 이야기와 함께 교차하며 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한국의 오지 여행'이라는 출판사의 목표에 맞게 여러 곳을 돌며 사진과 기록을 남기던 형 강영호의 부고 소식을 듣고 형의 유품을 정리하던 동생 강상호는 그의 방에서 여러 곳을 찍은 사진과 간략한 내용을 적은 파일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기이한 벽서를 발하는 천산의 수도원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산 밑에서 바라보면 그곳에서 수도원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지리적 위치와 수많은 방에 색색깔로 덧입혀진 글씨들, 하지만 그 글들을 썼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만 것일까?
사랑의 생애와 소설가의 귓속말로 이미 이승우 작가의 글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지만 이승우 작가의 첫 대면이었던 사랑의 생애를 읽으며 한없이 무너져내렸기에 소설가의 귓속말을 마주할 때도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담감이 커서 그랬는지 소설가의 귓속말은 처음 대면했던 소설보다는 그나마 조금은 소화할만했으나 여전히 '이승우'란 이름만 봐도 반가움에 덥석 들게 되는 책은 아님을 알기에 이번 작품도 꽤 고민이 되었지만 확실히 앞선 두 작품보다는 읽기가 수월했으나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됨을 이번 작품에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귀결로 이어질까 궁금했던 <지상의 노래>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던 천산의 벽서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모습으로 다가와 마지막엔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