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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계굴의 전설
김정희 지음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0년 6월
평점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곡계굴의 전설 / 김정희 청소년 소설
어릴 적 살던 곳은 섬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하면 떠오르는 인천상륙작전과도 연관된 곳이라 백 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와 관련된 전적비도 만날 수 있다.
어렸기도 했고 어른들이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는 솔직히 피부로 와닿지 않아 귓등으로 흘려듣기 일쑤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연중행사처럼 방둑 너머 갯벌에 사람이 빠지거나 차가 빠져 인명피해가 일어날 때마다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혼령한테 씌어서 그런 거라는 소문이 돌곤 했었다. 워낙에 많이 죽었고 지역마다 그런 얘기는 얼마든지 있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곡계굴의 전설>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릴 적 아버지한테 들었던 피난 이야기와 방둑에서 떨어져 갯벌에 처박힐 때마다 귀신에 홀렸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어 흘려들었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다시금 듣고 싶어졌다.
아버지가 큰맘 먹고 소를 팔아 제천에 있는 농고에 보내준지 6개월 만에 진규는 고향으로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터진 한국전쟁은 이제 곧 전쟁이 끝나리란 예상을 깨고 오래 지속되었고 전쟁에 차출된 형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떠날 수 없다는 아버지의 고집에 따라 진규네 가족은 피난을 가지 못한 채 집에서 멀지 않은 석회암 동굴인 곡계굴로 숨어들게 된다.
일단 급한 대로 언 땅을 파며 조그맣게 만든 방공호에 아버지가 자릴 잡고 나머지 가족들이 곡계굴로 들어오긴 했지만 진규는 걱정이 되어 아버지를 곡계굴로 보내고 자신이 집을 지키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미군이 진규의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숨어둔 곡계굴에 소이탄을 퍼부으면서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진규는 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곡계굴로 향하지만 미군의 집중 폭격을 맞은 그곳의 광경은 처참하기만 하다.
북한군이 그곳에 숨어들었다는 정보로 인해 느티나무 마을에 살던 주민 300여 명이 학살당한 사건은 이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알 수 없었을 이야기라 책을 덮으면서 아찔함을 느꼈더랬다. 많이 알려졌어야 하고 마땅히 알아야 할 진실이지만 제대로 된 사건 규명이나 사과가 이뤄졌을 리 없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표명해봤자 미군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사람들의 바람은 어린 나이에 전쟁에 내몰리고 먹을 것 없이 낯선 곳으로 내몰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왜 죽어야만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어갔을걸 떠올리니 가슴이 아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기에 곡계굴의 학살이 더 이상 묻히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