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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평점 :
들녘 /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 정명섭 장편소설. 산호 그림
미국 아칸소에서 시작된 독감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한반도는 서울을 시작으로 수도권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심정지 후에도 움직이는 시체의 출현에 미국 당국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정보가 밖으로 유출되지 못하게 하는 데만 급급해하는 사이 사건은 점점 더 커지게 되는데....
그런 아비규환 같은 상황에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지구를 탈출한지 어언 백여 년, 시뮬레이션대로라면 좀비가 멸종했을 거란 예측을 토대로 지구파는 11개 탐사선을 꾸려 세계 곳곳에 탐사팀을 보내 지구의 근황을 살펴보기로 하지만 대부분의 탐사선은 지구 착륙 도중 불안한 기체 결함으로 인해 사라져 실제로 지구에 발을 내린 탐사선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한반도에 발을 내린 K-기준이 선두로 이끄는 탐사선은 지구에 닿자마자 좀비와의 격렬한 싸움을 한 뒤 곧 뒤따라 올 지원팀을 맞이하게 위해 정착지를 만든다.
그리고 다음날 주변 정찰에 나갔던 K-기준은 맨홀 밑으로 빠져 고립되게 되고 어두운 곳에 혼자 갇혀있다는 사실보다 좀비가 있을지도 모를 두려움 속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때 오래전 좀비 출현 당시의 상황을 지구인이 기록해 놓은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의 주인은 이대 앞 치즈베라는 카페에서 일하는 청년으로 미국에서 발생한 아칸소 독감이 전 세계로 퍼지는 상황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다. 그럼에도 아직 한반도까지는 영향이 미치지 않아 긴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윽고 정부의 조치로 항공이 폐쇄되고 사람들의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점점 혼란스러움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프리덤 워치라는 단체가 미국의 음모론을 내세운다. 그렇게 조금씩 밝혀지는 아칸소 독감의 실체가 죽지 않고 썩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인간이었으니 점차 수가 증가하면서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고 일기장의 주인공을 비롯해 프리덤 워치 멤버 몇 명이 모여 카페를 아지트화하기 시작한다.
버려진 건물처럼 보이도록 꾸미고 장기전 돌입을 위해 비상식량과 무기 등을 구비해놓던 젊은이들은 좀비 소탕에 나선 군인들의 등장에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좀비와의 전투는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아닌 군인의 개입으로 아군 간의 피 터지는 전쟁이 군인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불투명해지기만 하는데.....
좀비 이야기라고 하면 다소 뻔한 스토리대로 이리저리 끌고 가다 결국엔 비스무리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곤 하는데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도 그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그런 뻔해 보이는 스토리보다 좀비의 출현으로 당장 내가 살기 위해 약자를 내쳐야 하는 인간 상실에 비중을 두고 있어 눈앞에서 뇌수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 널브러져 있는 것에 무덤덤해지고 당장 내가 살기 위해 돌이 갓 지난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는 애 엄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외면해야만 하는 현실은 내가 살아남고자함인 본능이지만 당연히 느낄 인간애까지 버려야 할 때의 그 고통은 죽음과 견주었을 때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점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어 좀비 소설임에도 지금껏 보았던 좀비 소설과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