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상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5
권정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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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상이라는 제목 때문에 일본 소설인 줄 알았는데 <칼과 혀>라는 작품으로 혼불문학상을 받은 권정현 작가의 작품이란 것을 알고 더욱 궁금해졌던 소설 <미미상>

학원 강사이며 때때로 소설을 쓰지만 소설가로서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여자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후 이별을 통보받는다. 따뜻하며 물렁한 살결, 쿵쿵대는 심장의 느낌이 방금 전처럼 생생한데 주인공은 여자친구에게 이렇다 할 이별의 변명도 듣지 못한 채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고 뭔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과 일방적인 이별 앞에서 여자친구에게 울며불며 매달리는 짓 따윈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이별을 통해 어제와는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그저 등을 맞대고 있다가 마음이 식으면 언제든 제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소름 끼치는 성찰을 느끼며....

애써 매달리지도,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하지도 않지만 주인공은 여자친구가 사는 집 빌라 밑을 서성인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 여자친구의 꺼진 방 창문을 바라보며 노상방뇨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오줌발에 맞아 허옇게 드러난 해골을 발견하게 되고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온다. 이따끔씩 여자친구가 방문해 누워있던 욕조에 해골을 담가 깨끗하게 씻은 후 헤어드라이기로 물기까지 말려 침대 위에 올려놓고 뻥 뚫린 눈과 왜소한 어깨의 해골에게 자신의 무수한 상상력을 덧붙이며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사람들의 온갖 잡동사니와 오물이 버려진 공터에 묻혀있던 해골, 무슨 연유로 아니 그것이 진짜 사람의 것인지 과학실에 걸려있던 것처럼 그저 모형의 그것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져온 주인공의 심리는 당최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골이 기분 나쁘고 오싹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주인공은 허옇게 뼈만 드러난 해골에게도 살이 있고 피가 흐르며 맑은 눈동자로 그 무언가를 보고 쿵쿵 뛰는 심장으로 부모님의 사랑도 느꼈을 거라며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녀와 헤어진 날 발견한 해골, 그럼에도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집을 서성이고 실재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을 해골의 존재를 통해 위안 받으려 한다. 그토록 외로웠던 것일까? 란 물음을 던지기엔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처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벽히 수긍할 수 없는 상황들 앞에 과연 주인공의 이런 기이한 행동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란 궁금증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무기력한 권태감이 온몸을 휘감는 그의 생활에 살아있는 자신과 죽어 뼈만 남아있는 해골의 만남은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살아있지만 활기를 느낄 수 없는 주인공과 인생에 대한 처연함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의 해골은 어느 순간 살아있음에서 오는 강력함 앞에 초연해지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얇은 분량이어서 별 부담 없이 다가섰는데 읽을수록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 앞에서 앞으로 나가는 길이 더디기만 했던 <미미상>, 소설이지만 깊은 사유의 철학 책을 보는듯한 착각과 독특한 문체가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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