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강원도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탄광 일을 하는 아버지와 가난한 살림에 줄줄이인 형제들 틈에서 학업의 꿈도 꿔보았지만 워낙 가난한 살림살이에 편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소희에겐 사치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업에 욕심이 있어 중학교나 고등학교까진 진학했지만 형편상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야 했던 소희는 어릴 적 좋아했던 지환일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되고 지환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식구들에게 감추느라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출산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된 소희는 뒷산에 올라가 아이를 낳지만 곧 사산되고 눈물을 흘리고 산에 묻고 돌연 집을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땅에 묻은 죄악 때문에 소희는 마음 편할 수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타향에서 어찌어찌하다 티켓 다방과 사창가를 전전하며 십 년의 세월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30대를 넘겨 생기는 잔주름보다 더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으며 저녁마다 진한 화장으로 웃음을 흘리며 남자들을 대해야 하는 나날들은 소희에겐 지옥 같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희가 일하는 군산 개복동 사창가 인근 대명동 성매매 업소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에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성매매 여성들이 죽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곳과 별다를 것 없이 성매매 업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의 또 다른 화재는 어쩌면 예견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리라.
재워주고 먹여주는 금액에 몸이 아프거나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하루를 쉬면 엄청난 금액을 물려 빚으로 달아두는 성매매 업소의 시스템은 돈을 벌기는커녕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몸이 아파도 거르지 않고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에 성매매 여성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평범함이 그녀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게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 등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그녀들의 삶은 작은 케이지 안에 오로지 번식만을 위해 가둬진 개나 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몸을 팔아 돈을 번다는 인식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없고 자신의 힘겨웠던 삶을 토해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작은 위로나 토닥임을 받을 수 없었던 그녀들의 삶이 가엾고 짠하기만 하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감시당하고 감금당한 채 화재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사고를 바탕으로 여성으로서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성폭행 등이 가출과 이어지며 윤락가로 흘러들어가게 된 이들의 사연에 덧붙여져 새롭게 탄생했다.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마음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는 소설이지만 몸을 팔아 돈을 번다는 인식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그녀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여자임을, 안전하고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임을 너무도 쉽게 잊어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