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 왕이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여인들
홍미숙 지음 / 글로세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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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세움 /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 홍미숙 지음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주하게 되는 칠궁, 하지만 관람 때마다 의외로 칠궁으로 향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없었다. 비슷비슷한 모양 때문에 아이들도 호기심에 두지 않지만 제대로 알고 보지 않으면 그 누구의 눈에도 그것이 그것일 수 있는 칠궁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극 레퍼토리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장희빈 정도가 아닐까.

그래서 <왕이 낳은 칠궁의 후궁들>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칠궁의 후궁들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실제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이란 주제의 1부에는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대빈궁이, 무수리 출신으로 최장수 왕을 낳은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육상궁,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경우궁이 소개되어 있고 추존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의 2부에서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저경궁,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선희궁,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덕안궁이 파란만장한 그녀들의 삶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그에 앞서 왕을 낳았지만 칠궁에 들지 못한 비운의 후궁으로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 김씨의 이야기가 먼저 소개되는데 신하를 잘못 간수한 것도 왕의 부덕한 탓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중심 없이 흔들린 선조 때문에 일이 더 복잡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란 생각을 하게 되는 광해군의 이야기는 15년이란 왕의 재위 기간을 끌어내고 왕으로 오른 인조와의 사연이 더 눈길을 끌었다.

나이는 꽉 찼지만 왕비의 소생이 아니었다는 점은 선조가 적자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함께하면서 힘든 세자 책봉과 자리를 비운 선조 대신 전란에 앞섰던 광해군의 활약은 왕위 계승을 반대했던 소북파와 사대주의를 중시했던 유생들을 제거하는 분노로 표출되었고 전란 때문에 소실된 궁들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위태로웠던 자신의 입지를 말해주듯 인경궁을 지을 당시 이복동생 정원군 사저에 왕기가 서렸다는 풍수지리설 소문에 정원군의 집을 빼앗아 경희궁을 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희궁이 다 지어지기도 전에 정원군 아들인 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였으니 앞으로의 일은 그 누구도 모를 일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TV에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영조의 평생 콤플렉스를 말해주는 일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평소 효성이 지극하다고 알려진 영조가 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묘 근처에서 벌목을 하던 나무꾼을 잠행 중에 발견하였는데 보통이라면 경을 치고도 모자랄 큰일이지만 나무꾼이 한 말 한마디에 영조가 그에게 묘지를 관리하는 품계를 주었다는 내용으로 원과 능의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백성이 소령원을 소령능이라 잘못 말한 것이 오히려 그에게 벼슬을 내리게 된 사연은 어머니의 미천한 출신이 영조에게 얼마나 뼛속 깊이 각인된 것인지 엿볼 수 있었다.

삼간택이 아닌 무수리나 나인으로 후궁에 오른 그녀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이뤘던 그녀들이지만 역사를 들여다봤을 때 과연 그게 인생 역전이었던 것일까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일화들이 종종 등장한다.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로 시샘하는 후궁들의 모습은 사극에서 어렵지 않게 등장하지만 이제는 그런 장면 자체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란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사랑과 권력 때문에 목숨을 내건 그녀들의 사투는 오히려 당쟁에 휘말려 가열차게 버려진 일화들과 맞물려 보는 시선을 달리하지 않아야 할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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