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볼 곳이 너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속상해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도 볼 곳이 얼마나 많으며 역사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걸 알려고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이야기를 꺼내도 정작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울분과 억압의 역사가 싫은 탓이리라.
아마 역사에 관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텐데 해외여행지를 다녀왔다며 자랑삼아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역사 유적지는 다녀왔냐고 물어보면 거의 그곳이 어떤 곳인지조차 몰라 한다.
그런 차이 때문에 언젠가부터 타인에게 문화 유적지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방구석 역사여행>을 쓴 유정호 선생님이 도입 부분에 쓰신 글을 보면서 공감이 많이 갔다.
나라고 역사 인물,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많이 알겠는가, 그저 사람마다의 관심의 차이일 텐데 역사는 그저 지루하고 그렇고 그런 분야로 생각하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안타깝고 씁쓸하다.
이 책은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로 나눠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는 곳과 유적지 탐방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생소하게 다가오는 곳들이 소개되어 있다.
평소 역사 책을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목차를 보고 '에이 이런 책 너무 뻔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소개된 지역의 이야기 한 개씩만 제대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역까지 갈 것도 없이 펼쳐 본 곳에 관한 이야기 하나만 제대로 읽어봐도 이 책이 그동안 읽었던 책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 살기에 아이와 서울 곳곳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도 처음 등장한 '옥천암'은 그 어느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곳이라 꽤나 생소하게 다가왔는데 조선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 한 사찰이라 유서가 깊은 곳이어야 하지만 정작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 앞을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제천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더럽고 냄새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백 년 전 병자호란 때문에 잡혀간 수많은 처자들이 그곳에서 정절을 잃은 자신의 몸을 씻어냈음에도 뿌리박힌 유교 사상 때문에 그 어느 곳에도 돌아갈 수 없었더라는 이야기는 역사적 아픔을 더해주고 있다.
유럽의 유명한 유적지를 다녀온 사람들은 한국의 유적지는 단조롭고 시시하다며 실망스럽다는 기색을 내비칠 때가 많은데 나는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의 태도보다 그런 부모의 태도를 보고 자라나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역사인식이 더 우려스럽다. 재미있게도 아이와 한국의 여러 곳들을 둘러본 부모들보다 주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부모들에게서 그런 리액션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이즈만 놓고 그것을 편애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긴 하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에게 일단 읽어보고 판단하라고 싶어진 책이었는데 지역마다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좋았지만 이미 많이 알려진 곳임에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즐거운 방구석 역사여행을 제대로 즐긴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