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
이름은 익히 알고 있지만 앞선 두 작가와 달리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풋내 나는 학창 시절에 읽었기에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그렇기에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훑어본 이반 투르게네프의 생애는 세 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실제로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가정교사에게 다양한 언어와 성장기에는 독일로의 유학을 떠나 방대한 지식을 흡수했던 인물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금수저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건데 일반인 눈엔 부족함 없는 귀족의 삶이 마냥 부럽게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귀족들의 모습은 척박한 생활을 하는 서민들의 메마른 감성과 달리 섬세하고도 가슴 아린 감수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서민들의 현실에 비춰볼 때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여름 땡볕 아래 이토록 가슴 시린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읽어본 이들이 이반 투르게네프의 섬세함을 왜 그렇게 극찬했는지 책을 덮으며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세 번의 만남', '파우스트', '이상한 이야기'라는 세 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데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각기 다른 강렬함으로 다가와 사랑에 대한 순수함을, 때로는 인간 내면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담아내고 있다.
<세 번째 만남>에서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어느 저택에서 아리따운 여자가 노래 부르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다. 창밖으로 비친 찰나의 모습에서 주인공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것은 강렬함으로 남게 된다. 이후 러시아로 되돌아와 한적한 시골에서 사냥을 즐기던 주인공은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여성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탈리아에서도 그랬지만 이후 두 번째 만남에서도 여성 옆엔 자신이 대적할 수 없을 만큼 유려한 신사가 있어 주인공은 여성에게 다가설 수 없다. 그렇게 꿈같은 두 번째 만남 이후 시간이 흘러 어느 파티장에서 주인공은 그 여성과 다시금 만나게 되는데 그제서야 주인공은 여성과 신사가 함께 있을 수 없는 사이이며 자신의 감정 따윈 상관없이 여성의 관심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향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의 세 번의 만남은 끝이 난다.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벨은 오랜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평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대학 동창을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아내가 파벨이 유학을 떠나기 전 마음에 품었던 베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학을 앞두고 만난 베라와 그의 어머니는 파벨에게는 꽤 독특하고도 주관이 확고한 인물들이었는데 베라의 어머니는 파벨을 마음에 들어 해 잦은 만남이 이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베라에게 마음이 가지만 베라의 어머니가 떠날 것을 종용하면서 그렇게 베라는 파벨의 마음 한구석에 아련함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랬던 베라가 대학 동창의 아내가 되어있었고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파벨은 그들의 초대에 응하게 되면서 잦은 왕래가 시작된다. 워낙 어릴 때부터 엄한 어머니로부터 소설이나 시보다 냉철함을 요구하는 학문을 배웠기에 파벨은 자신이 푹 빠져있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베라에게 낭독해 주며 시를 알려주기 시작한다.
파벨이 자신과 베라의 만남에 대해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에 중반부가 치닫기도 전에 독자는 왠지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다가올지 예감할 수 있는데 이미 예상했음에도 뭔가 푹 꺼져버리는 듯한 느낌에 한동안 가시지 않는 얼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실린 <이상한 이야기>는 직장일 때문에 T 시에 머물게 된 주인공이 호텔 종업원으로부터 기이한 마력을 지닌 인물을 소개받아 신비한 경험을 한 것과 그곳에 사는 아버지의 오랜 지인의 딸을 만났던 이야기가 함께 소개되는데 괴이하면서도 신비스러운 힘을 지닌 인물과 보통의 처자들과 다른 확고한 주관을 지닌 아버지 지인의 딸은 몇 년이 지난 후 순례자가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인데 풍족함을 누리면서 그것을 다 버리고 마치 인간의 온갖 죄를 자신이 짊어진 채 죗값을 받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는 좀처럼 이해되지도, 그렇다고 뭔가 공감이 되지도 않지만 그래서 제목처럼 이상한 이야기처럼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연민,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고난 등을 담아 각각의 이야기가 꽤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그런 기묘하고도 강렬한 느낌만큼이나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느껴지는 감정의 섬세함은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고통이 이것일 만큼 아리게 다가와 기억에 오래 머무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