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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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 김선지 지음

명화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질렀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 어떤 사회적 배경을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더라도 다양한 개성을 담은 그림들은 때론 그 자체만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강렬함을 전해주기에 평소 그림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도 시간의 마법에 걸린듯한 기묘함을 경험하곤 한다.

이 책이 명화를 주제로 한 책이었다면 아마 그렇게 호기심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그랬듯 천대받고 멸시 받았던 여성들의 미술사를 다룬 책이었기에 평소 관심 분야가 아닌 미술사에 흥미를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싸우는 여성들이 미술사>는 가부장 수레바퀴 아래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나 '마리에타 로부스티', '엘리자베타 시라니', '유디트 레이스테르', '앙겔리카 카우프만',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의 이야기를 담은 1부와 편견과 억압을 담대한 희망을 바꾼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라비아니 폰타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클라라 페테르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로자 보뇌르', '파울라 모더존 베커', '한나 희', '수잔 발라동'의 이야기를 담은 2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요아나 쿠르턴', '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 '로즈 베르탱', '카린 라르손', '거투르드 지킬'의 이야기를 담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남성만큼 출중한 능력을 겸비했지만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분야에서 그림자 역할을 했던 여성들, 최근 아인슈타인 업적 뒤에 숨은 그의 아내 역할이 조명되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씁쓸함을 삼켜야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너무 크게 다가와 알려지지 않은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여성이 미술을 배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 그나마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몇몇 여성들만이 기초적인 부분을 배우며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일에 뛰어들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깔린 여성 차별이 말해주듯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남성들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울분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귀족 집안은 아니나 부유한 공증인 집안에서 태어났던 '데 로시'는 다방면으로 재능이 많았던 그녀를 대학에 입학시키며 드로잉과 회화를 배우게 한 아버지 덕분에 당시 사회에선 드물게 자신의 재능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뛰어난 재능을 시샘한 남성들이 만들어낸 소문으로 돈을 벌 기회가 막히고 결국엔 흑사병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는 그녀의 재능을 아버지가 알고도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남성들의 시샘에 시달리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불러온다.

그리고 유명한 화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특출한 그림 실력으로 궁중화가의 제안을 받았지만 아버지 의사로 거절하고 죽을때까지 아버지 그늘에 가려졌던 '마리에타 로부스티'와 반대로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 뒷바라지 한 아버지를 둬 궁정화가로서 승승장구했던 '앙귀솔라'의 이야기는 또 다른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여성들의 재능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천대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그녀들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재능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하므로 우리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름으로 기억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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