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일 정도의 섬세한 글을 구사하는 그녀의 소설을 20대 땐 꽤 사랑했었다.
온전치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날들 속에 과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란 망막함 속에서 그녀의 글은 더 절망적이고 더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고 온몸을 휘감는 절망감 때문에 이제 다 그만 내려놓고 싶은 기분에 젖어들었던 적도 숱했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내 몸을 휘감던 파탄적인 감정은 며칠이 지나면 현실에 대한 안도감으로 변했고 그녀의 소설을 통해 울고 싶을 정도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감정들이 비로소 조금씩 정화되고 있다는 경험을 되풀 하면서 나의 20대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소설이 떠오른다.
때로는 방금 읽고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문체를 통해 같은 감정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던져주는 그녀의 소설은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선 소설이 아닌 그녀 특유의 감성을 담은 에세이로 탄생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한 에세이는 아니지만 그녀가 작가 활동을 하며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깨달은 것, 감사한 것들과 슬펐던 것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것들을 모아놓아 평소 그녀의 문체를 사랑했던 독자라면 소설 속에서 태어난 캐릭터가 아닌 '에쿠니 가오리'란 오롯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에세이는 쓰기, 읽기, 그 주변이란 주제로 그에 걸맞은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다.
<쓰기>에 등장하는 '무제'란 이야기는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몸 어딘가에 무언가 걸려있다고 얘기하는데 도대체 어디에 뭐가 걸려있다는 건지, 그래서 병명은 무엇인지 묻는 대답에 의사는 답답하고도 아리송한, 어떻게 보면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이야기가 이쯤 되다 보니 '이거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소설도 있나 보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밀려오고 '그래서 종잡을 수 없는 이 이야기의 종착지가 뭘까'란 궁금증을 지나며 후반부에 들어서면 의사가 주인공에게 "아무튼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이 온몸으로 주워 모았다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몸 어딘가에 뭔가가 걸려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어디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는 결국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의사의 그 한마디의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더랬다. 에세이가 도입부부터 이렇게 강렬함을 발산하니 어찌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읽기>편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도피인 동시에, 혼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읽고 책을 통해 고독한 시간을 달랬던 내 모습을 다독여준 것 같아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렇게도 공감 어린 문장이라니, 쓰고 읽는 것이 어떨 땐 작위적이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제대로 즐길 수 없어 심란한 고민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랬었지,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그랬던 나의 마음을 달래줬던 거였어.'라며 지난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일상적인 것들에 깃든 소소함을 섬세하게 찾아낸 문장들,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던 감정이기에 더 진한 감정으로 가슴 깊이 다가왔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