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동생을 너무도 원했기에 언니는 미리부터 동생의 이름을 '유원'이라 지었다.
11살이나 어린 동생이었지만 식당 일을 하시는 부모님 대신 살뜰히 보살피면서도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두각을 보이는 데다 성격까지 좋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았던 언니.
그렇게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언니는 12년 전 아파트 화재 사고로 죽었다.
위층에 살던 할아버지가 베란다에서 피웠던 담배 불씨가 화재가 되어 14층까지 빠르게 번진 불은 아파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버렸고 동생과 함께 낮잠을 자다 깬 언니는 물을 묻힌 이불에 동생을 감싸 11층 베란다에서 동생을 던지고는 자신은 질식사했던 금정동 아파트 화재사건.
그리고 12년 전 11층에서 던져졌던 유원은 중년 남성에게 받아져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만큼 유명했던 사건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가는 곳마다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아이로 타인에게 이미 유명한 아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동정 어린 눈으로, 누군가는 언니의 몫까지 잘 크란 당부에, 집에선 어떤 식으로든 조심하려는 부모님이 있어 유원은 언니의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그런 감정들은 쾌활했던 유원을 죄책감에 웅크리게 만들었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친구는 있지만 학창 시절 교감을 나눌만한 친구는 만들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점심시간조차 친구들과 말을 섞으며 함께 밥을 먹기보다 5층 옥상 앞에 막아논 걸상들 사이에 혼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한 유원은 평상시처럼 시간을 보내다 늘 잠겨있는 옥상을 마스터키로 열고 들어가는 수현을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알고 싶지 않았던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유원>은 자신을 살리고 죽은 언니의 부재로 인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유원의 짓눌린 무게감이 표현된 소설이다.
살았더라면 뭐든 됐을 언니는 자신으로 인해 살아난 동생에게 고마움이 아닌 미움이 대상이 되었고 11층 아래에서 자신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렸지만 본인은 그 여파로 다리가 부러져 장애인이 된 아저씨는 궁핍할 때마다 엄마 아빠를 찾아와 곤란함과 불편함을 안겨주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둘 다 유원에게 고마운 사람이지만 유원은 그들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그렇게 감당하고 살아온 게 용하다 싶을 만큼 읽는 내내 답답함과 이건 아니라는 욕지기가 올라옴에도 유원과 부모님 입장에서는 또한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는 공감이 뒤섞여 착잡한 마음이 돼버리고 마는 소설 <유원>
유원이 수현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달라지지 않고 평생 지속되었을지도 모를 악연의 끈은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수현으로 인해 그동안 감당해왔던 무게를 덜어낼 수 있게 되면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유원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