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실존했던 인물과 후세에 남겨진 역사적 사건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 살을 붙인 소설을 좋아한다.
얼핏 보면 철학 책인가 싶은 제목과 '다 빈치 사후 500주년 기념작'이란 문장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쓴 소설인가 싶어 지나치려는 찰나 그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살인사건을 쫓는 이야기라는 설정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연상되면서 무한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댄 브라운의 소설에 대해 쓰레기 같은 상업 소설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역사적 바탕에 가공할 상상력을 불어넣어 재탄생한 소설을, 작가의 역량을 사랑하기에 <인간의 척도>도 엄청난 상상력을 자랑할 소설이 아닐까 싶어 더 기대되었던 것 같다.
'갈레아초 마리아'가 암살되고 그의 아들인 '지안 갈레아초 마리아 스로프차'는 삼촌인 '루도비코'의 정당한 방법에 밀려나 비제바노 성에 감금당해 있다. 바리 공작이자 조카를 밀어내고 밀라노의 군주가 된 '루도바코 일 모로'는 190센티미터라는 장신에 마키아벨리적인 냉소로 가득 찬 군주의 표본으로 엄청난 세금을 받아들이면서도 성직자들 앞에선 가식과 위선을 떨 줄 알며 한편으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도 아는 인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군주가 그랬듯 여인네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남성으로 등장하는데 다빈치는 그런 그의 부성을 자극하며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로 청동 말 동상으로 세우겠다고 장담해 루도바코 일 모로의 곁의 궁정에 머물며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다빈치가 약속한 아버지의 청동 말 동상은 몇 년이 흐르도록 완성되지 못했고 급기야 루도바코 일 모로는 다빈치를 불러 무언의 압박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남자가 궁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의 죽음을 밝히는 일을 다빈치가 맡게 된다. 그렇게 다빈치는 젊은 남자의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죽은 젊은이는 다빈치도 잘 알고 있는 자였기에 더욱 그의 죽음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이 자신의 제자였으며 청동 말 동상을 제작하기 위해 고심하던 방법을 나쁜 수법에 쓴 것이 걸려 내쳐지게 된 것을 마지막으로 보지 못했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 전까진 탁월한 실력을 갖춘 젊은이였기에 다빈치로서는 어떻게든 풀어야 할 문제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젊은이가 죽기 전 루도바코를 만나려고 했었고 그랬던 그가 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은 군주의 지시가 있었기에 다빈치는 더욱 고민스럽게 사건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건축, 그림, 해부학, 악기 연주, 전쟁 무기를 만드는 일까지 다재다능한 다빈치의 활약은 발견된 단서로 인해 범인에게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것을 통해 얽힌 이해득실도 드러나게 된다.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던 제목의 영향이었는지 많은 등장인물을 보고 천천히 읽어나가야 할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대상이 반영된 소설이라 그런지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익숙한 대사들이 꽤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뼈 있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담아낸 대사들은 역시 고전미를 느끼기에 충분해서 댄 브라운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지만 근엄하고 천재적인 이미지가 아닌 다빈치의 이미지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캐릭터를 탄생시키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