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올바른 자세를 위해 똑바로 앉아있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바른 자세에 대한 이로움은 알지만 자세 유지만 신경 쓰다 미처 어깨 힘까지 빼지 못해 혼자 있는데도 어깨가 뭉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걸 보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냥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어도 되는데 왜 우린 혼자 있는 시간에도 이렇게 원리원칙에 나 자신을 가둬놓아야 직성이 풀려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나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타인을 발판 삼았던 일, 내 감정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며 불을 켜고 험담했던 일,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몰상식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던 일, 나조차도 쉽게 바뀌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고민에 너의 노력이 부족해 서라며 일장연설했던 일.... 지나고 보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곤란한 일 투성이다. 어른이 되면 좀 더 관대해지고 여유 있어지겠지 싶은 마음은 나이가 먹어가는데도 좀처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런 마음들을, 그런 상황들을 타인의 해석과 타인의 지혜를 빌어 한 박자 쉬며 고개 끄덕이게 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가끔은 '나보다 적게 살았으면서 연장자 앞에서 풍월을 읊는구나' 싶은 못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보다 덜 살았는데도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덴 놀라움과 대견함이 앞선다. 그러하기에 나이를 떠나 배울 게 있는 사람에겐 공감하며 받아들이는 게 어른의 용기가 아닌가 싶다.
'사과는 늦더라도 옳다'라는 일화가 나온다.
저자가 어느 강연에서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학생의 고민에 그럼 다른 길로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답을 해줬더니 강사님이 너무 정답처럼 말한다며 뾰족하게 받아들였다던 학생은 그로 한참이 지난 후 메일로 그때 정말 미안했노라는 사과의 말을 담았다고 한다. 정작 저자는 잊고 있었는데 본인이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뒤늦은 사과는 본인을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옳은 거라는 이야기인데 살아오면서 내가 왜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굴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 한밤중 뜬금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나로서는 사과에 대한 일화가 남다르게 와닿았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어떻게 사과를 해....', '그래도 미친척하고 미안했다고 문자라도 보내볼까...' 상충하는 감정 때문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런 행동을 안 하고 이런 고민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되는데 사과에 대한 일화를 보면서 이런 미안함이 평생 갈 거라면 더 늦기 전에 사과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용기란 생각이 들면서 왠지 조금은 기운을 얻은 느낌이다.
에세이답게 공감 가는 일, 평소 미운 인간에게 해주고 싶었던 속 시원한 말들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고민되었던 일들엔 왠지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된 것 같아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너무 힘을 빡 주지 않고 편하게 지내도 좋았을 일들 앞에 왜 그렇게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하면서 힘들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싶다. 그저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나답게 살아가면 되었을 텐데 그동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려고 안달복달 애쓰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