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보단 이성적인 발언을 꾹꾹 눌러 담아 (읽었던 책들이 도저히 감성적인 관점에서 볼 수도 없었던 책이었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뼈를 때리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던 강준만 교수님의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는 단연 그동안 만났던 어마 무시한 책 제목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제목만 보자면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조금 감상적인 느낌으로 바꾼 제목이랄까? 싶었는데 확실히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유쾌한 부분도 있어 딱딱하고 보수적이게만 느껴졌던 이미지가 조금은 부드럽게 전달된 것 같다.
들어가기에 앞서 영화란 꿈을 좇으며 달려왔지만 결혼 후 대학 동기가 쌀을 가져다줄 정도로 가장으로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던 봉준호 감독의 일화를 들며 젊은이들에게 현실적인 면을 배제하고 꿈을 좇으라고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거릴 던져주는데 확률적으로 13만 5,800분의 1이라는 실현은 나조차도 아이에게 삶엔 정답이 없는 거라며 조금 살아본 사람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확신 없는 답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 앞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꿈같은 이야기였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1번부터 50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정치인, 작가, 영화나 드라마 대사, 작품 속 대사 등이 끊임없이 나오며 챕터마다 등장하는 주제에 대해 각을 세우는 인물들의 주장이 상반되게 나오는데 마치 넓은 강의실에서 강연을 듣고 있는 느낌이 들어 글인데도 꽤 빠져들어 읽게 됐던 것 같다.
'잠재적 낙원의 문은 지옥 속에 있다'라는 주제의 글에서 갑자기 위험이나 불의의 사고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만약 평소에도 집단 정서가 이런 상태라면 모두가 행복하고 협조적이며 권태에서 해방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남아공 작가 '헤인마리스'는 재난이 사람을 차별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며 러셀의 주장과는 다른 견해를 보인다. 그리고 재난심리학자인 '존 리치'는 긴급한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하기보다 얼어붙어 있는 상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재난 앞에서 희망과 관용과 연대의 힘을 이야기했던 '솔닛'의 말대로 '이 시대의 잠재적 낙원의 문은 지옥 속에 있다'라는 그의 또 다른 말은 최근 코로나19로 공포감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전 세계 지구인에게 한편으로는 공동체적 일체감이란 감정에 정치적 분열과 증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재난 앞에 이런 증오의 감정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재난 앞에서 희망과 관용과 연대의 힘이라는 별을 보면서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라는 말로 연결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길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희망을 위한 아포리즘'이란 부제에 맞게 격언이나 잠언 등이 더해져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담고 있어 나로서는 강준만 교수님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글쓴이의 주장에만 따라가지 않고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나의 생각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