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내 방 하나 - 손 닿는 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들
권성민 지음 / 해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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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 / 서울에 내 방 하나 / 권성민 에세이

- 손 닿는 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들

아직까진 잔잔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아이가 얼마 전에 친구들과의 버킷리스트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성년이 되면 집을 나와 혼자 살아보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아직 중학생도 안된 아이들이 벌써부터 혼자 살고 싶을 건 뭐람, 집 나가면 고생이지' 싶은 마음과 약간의 서운함에 여자가 혼자 사는 건 안된다고 일단락하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 아이가 온전히 자립할 기회를 앗아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어도 무방할 아이의 말에 너무 진지하게 안된다라고 못 박은 것 같지만 아이가 못 미더워서가 아닌,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위험해지기에 혼자 산다는 이유로 행여 못된 놈의 타깃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자취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작가의 지인 이야기에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의 소중함과 공과금이란 현실을 느껴볼 기회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젠가 핀란드 교육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학교 숙제로 한 달 월급이 얼마라는 가정하에 다달이 나가는 공과금이나 보험료, 저축 등을 꼼꼼하게 계산하고 계획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교육 제도를 탓하기보다 내 아이에게 그런 현실적인 면을 부각시켜줄 면도 있겠다 싶었는데 질문 자체가 참 오해로 보일 소지가 다분한데도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자립할 수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성도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자식이 혼자 산다는 말에 네 삶이니 그러라고 웃으면서 수락하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이미 성인이 된 자식의 결심 앞에서 되네, 안되네 이야기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긴 하지만 어찌 보면 너무 쿨하게 수락하는 것 또한 부모이기에 쉽지만은 않다. 일단, 나도 꽤 오랫동안 자취를 해보았기에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 더 크게 기우는데 일단 자식에 대한 문제는 제쳐놓고 오랫동안 고시원이나 원룸에 살았던 작가의 자취생활을 꾹꾹 눌러 담은 책 내용엔 많은 공감이 갔다.

나는 원래 소리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외동이었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취생활도 꽤 오래 하였기에 함께 살면서 무덤덤하게 지나칠 소리들이 혼자이기에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글엔 나도 모르게 격하게 공감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할 때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은 시부모님이 마련해 주는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참 못난 생각을 많이 했더랬다. 그 시기에 그 친구들과 관계가 소원해졌던 건 말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이 내 삶과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 남편에게 향하는 말에 가시가 돋쳐 있어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었다. 친구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다고 하는데 나는 생삼겹살도 비싸서 냉동 삼겹살을 사 먹던 시기였으니 친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별거 아닌 말들을 내가 참 많이 꼬아서 들었구나 싶다. 그리고 그때 잘 살던 친구들은 아직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유가 안돼 누리지 못하던 것들을 지금은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늘었고 남편과는 지난 일을 얘기하며 하하 호호 웃기도 한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었기에 지금보다 더 욕심내지 않고 현재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까, 돈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타인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없어도 비참해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서울에 내 방 하나>를 읽으며 내가 지나온 삶에 대한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맞아, 맞아 그랬었지' 하면서 공감하다가 '그래 그땐 그런 게 안 보여서 힘들었어'하고 이제서야 느낄 수 있는 기분에 마음 편해지기도 한다.

옆집에 살아도 무방할 만큼 나와 다르지 않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데도 삶을 바라보는 그 깊이엔 많은 고민이 있었겠다 싶어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다.

조금은 식상하게 다가왔던 제목이었는데 사진을 보고 작가분이 남자란 사실에 첫 번째 충격과 '이거 내 글이야?' 싶을 만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기분 좋은 충격을 받으며 왠지 물질적으로만 다가왔던 제목에 담긴 내용이 이렇게나 많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게 다가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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