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며 한편으론 광인인가 싶을 정도로 복잡 미묘한 기복을 품고 있는 22살의 시인 달베르,
<모팽 양>은 달베르가 친구인 실비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지의 주요 내용은 폭발하는 나이와 시인의 감성에 걸맞게 온통 이성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달베르의 이성관이 지나칠 정도로 몽상가적인 느낌이지만 어찌 보면 너무도 사실적인 표현이라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는 면이 생기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래서 연애란 걸 해볼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 달베르는 미망인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너무 어리면 연애에 대해 가르치는 게 힘들고 유부녀이거나 창녀는 마뜩잖으며 또한 더럽거나 가난하면 안 된다는 그의 연애관에서 검은 옷을 입고 황금빛 눈물방울을 달고 있는 미망인이야말로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기에 좋을 대상이었는데 달베르는 그에 부합되는 부유한 미망인 로제트를 만나 곧 연인 사이가 된다.
자신의 연애 가치관에 부합되는 로제타, 이제 평생 사랑할 일만 남을 것 같은 그에게 로제타와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애정이 식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다시 혼자로 돌아가는 것 또한 선택하고 싶지 않다. 불같은 사랑은 금세 식어버리고 이런 자신의 마음을 로제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달베르의 마음을 재미있게도 로제타는 꿰뚫어보고 있다. 환상 속에서나 나타날 것 같은 불멸의 사랑이란 현실에서 나타날 수 없으며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 이들의 심리에서 왠지 나는 작은 전율을 느꼈다.
초반 부분 길게 이어지는 달베르의 연애 가치관과 이후에 로제타와의 만남까지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어 '설마 이렇게 끝나지는 않겠지'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지만 남자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남장으로 모습을 바꿔 사는 테오도르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처음엔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지라 테오도르인 모팽 양이 등장하면서 왠지 <위험한 관계>가 떠올랐는데 스토리가 비슷해서라기보다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표현과 심리묘사, 고전이 주는 느낌이 비슷해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을 복잡 미묘한 심리묘사는 한편으론 숨이 턱 막힐 만큼 섬세하여 이중적인 느낌마저 풍기는데 재미있게도 이런 부분에서 꽤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심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 앞에서 처절한 사랑을 탐닉하는 그들의 모습은 꽤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