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한여름 가족과 길상사를 찾았더랬다.
백석 시인과 김영한의 인연이 묘하게도 법정 스님에게로 닿아 고즈넉한 절로 탄생한 일화를 가슴에 새기며 법정 스님이 실제로 기거했던 방을 둘러보다 진정한 의미의 '무소유'가 무엇인지 깨닫고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의 텅 비다시피한 방을 둘러보면서 그동안 글로만 접했던 진정한 무소유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은 깨달음 앞의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욕심을 부리며 타인을 시기하고 때론 엄청난 에너지로 사람을 미워하며 살았던가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베풂의 의미를 깨달아도 내가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열며 사랑하기란 쉽지 않아 번번이 나약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는데 이 책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엉킨 실타래가 풀리고 복잡하던 마음의 소용돌이가 가라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말씀>은 법정 스님이 살아계시면서 쓰신 법문을 모아놓은 글이다. 그때그때 일어났던 사건들이 언뜻 엿보이기도 하고 사건과 관계없이 바쁜 일상에 쫓겨 서로에게 예리한 말의 칼날을 들이대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꾸짖는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나의 상태를 미처 바로 보지 못하고 화의 방향을 상대에게 겨눈 채 아슬아슬한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법정 스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반성과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말이 너무 많아 소란스러운 현실에서 내가 후련해지자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뱉어낸 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 주었는지, 인도 사람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 도끼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고 믿는다는 글을 보며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그 말을 이해하게 됐던 것 같다.
배려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인 경쟁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오지랖이며 착하거나 순수한 모습은 병적으로 각인돼버린 세상에서 법정 스님은 진정한 나에 대해서,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온 세상이 밝아지기 위해서 답은 멀리 있지 않으며 현실에 뿌리내린 불신은 결국 인간 사회를 더욱 삭막하고 힘들게 만들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런 말씀들 중에 나 또한 타인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할 무시무시한 조건들을 걸러내지 않고 아이 머릿속에 심어준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글을 읽다 보면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해서, 부족함으로 인한 결핍이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가장 쉬울 수 있지만 처음이 가장 어려울 수 있는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과 침묵의 진정한 의미는 어쩌면 인간이 평생을 짊어져야 할 수련의 한 과정임을, 지금껏 겪었던 시행착오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었음을, 다시금 되풀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인간은 그렇게 태어나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