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이토
작가의 <츠바키 문구점>의 배경이 되는 곳 '가마쿠라', 최근 권남희 번역가님의 에세이를 읽으며 십 년이 넘게 가고 싶었던 일본
지역이 바뀔 정도로 나에겐 핫하게 떠오른 지역이 '가마쿠라'였던지라 왠지 기묘해 보이는 표지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동했던 것
같다.
2019년.
남성용 비즈니스
잡지 DAP에서 편집이 하고 싶어 출판사 호분샤에 지원했던 '하야사카',
대학 시절 정치,
경제, 문화, 가십거리에 이르기까지 알아두어야 할 모든 것이 망라돼있던 DAP에 대한 애정으로 지원했지만 하야사카는 총무부에 배정되었고 이후
DAP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번 내비친 뒤 주부용 여성 잡지인 미모사 편집부로 옮길 수 있었지만 언젠가 DAP에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던 하야사카는 얼마 전 DAP이 폐간되면서 마지막 남아있던 희망을 잃어버린다.
현재 일에 만족할
수 없었던 하야사카는 퇴직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SF 소설가 '쿠로소 로이드'와의 취재가 있어 가마쿠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도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그렇게 고민을 잔뜩 껴안은 채 취재는 시작되었고 중간에 담배가 떨어진 작가를 대신해 담배를 사러 나온 하야사카는 길을 잃고
마는데....
2013년.
아버지가
치과의사였고 언니도 오빠도 아버지를 따라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아야카는 의사보다는 누군가를 보조해 주는 일이 더 맞아 치위생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성격이 좋은 유즈루를 만나 사귀면서 갑작스러운 임신을 하게 되었고 마흔이 될 동안 변변한 직업 없이 연극이나 영화, 독서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던 유즈루가 연극을 포기하고 영업사원 일을 선택하면서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18년이란 세월이
흘러 슬슬 아들 신고의 입시학원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진로상담 문제로 학교를 찾았던 아야카는 신고로부터 대학교에 가지 않고 유튜버가
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길 듣게 된다.
어찌 됐든 신고를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일념에 타오른 아야카는 지인으로부터 가마쿠라의 에가라텐진샤의 학업 효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신고와 함께 가마쿠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간절한 기도로 아들 신고의 마음을 돌리려던 아야카와 그런 엄마와 상관없이 가마쿠라에서 행운의 스마트폰 케이스를 구입할 생각에 따라나섰던
신고,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들렀던 가마쿠라에서 물건을 고르는 아들과 상점의 분위기에 밀려 길가로 나왔던 아야카는 두리번거리다 그만 길을
잃고 만다.
2007년.
선생님보다 책을
소개해 주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을 것 같아 사서 일을 선택한 코즈에, 그녀가 일하던 중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있던 사쿠야가 먼저 말을 걸어 책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인연이 닿아 둘은 연인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물 흐르듯 사쿠야로부터 결혼하자는 말을 들었지만 코즈에는 정말 자신이 결혼을
원하는지, 결혼을 해서 잘 살수 있을지 고민스럽기만 하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멋진 프러포즈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처럼 꺼내진 결혼 얘기가 가볍게 느껴져 코즈에는 결혼에 대한 확신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결혼 장소로 신사가 지목돼 사쿠야와 신사 앞에서 보기로 했던 코즈에는 중간에 길을 잃고 만다.
2001년.
가마쿠라로 결정된
수학여행 첫날, 이치카와 노기는 버스 짝꿍이 되어 가마쿠라로 이동 중이다. 평상시 이상한 아이라는 수군거림이 있었던 노기는 예상외로 말이 잘
통하고 배려 깊은 아이라 이치카는 노기와 함께하는 수학여행이 설레기 시작하지만 이윽고 도착한 가마쿠라에서 주어진 자유 시간에 노기와 떨어져
카논과 루미 일행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지루함이 앞선다.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취향에 호응하며 따라다니던 이치카는 지루함에 다른 길로
들어섰다 길을 잃게 된다.
1995년.
대학시절부터 피
끓는 청춘을 오로지 연극에만 바쳤던 모키치, 그리고 그런 열정만큼 한때 잘나가던 모키치는 대학 졸업 후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감을 느끼며 힘겹게
연극단을 꾸려오고 있다. 하지만 십 년이 넘게 함께했던 유즈루마저 연극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모키치는 서운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든다.
힘든 순간
버텨냈다기보다 어찌어찌하여 위기를 모면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힘겹게 꾸려왔던 극단, 방송국 일을 하는 연극 후배에게 일자리를 구걸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그럼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는 와중에 무엇 하나 이뤄내지 못한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믿었던 유즈루마저 그만둔다는 소리에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모키치는 전혀 다른 풍경에 깜짝 놀라고 만다.
1989년.
전쟁 중 태어나
아버지가 하던 고서점 '하마쇼보'를 이어받은 분타, 60이 넘은 나이에 혼자 하루 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고서점을 꾸리면서도 별다른 생각에
잠기지 않았었지만 최근 근처 고서점을 하던 주인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분타는 자신이 지금까지 제대로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 되묻는 일이 많아졌다.
아내도, 손자도 없는 쓸쓸함은 오래전 자신을 좋아한다고 표현해 주었던 마짱에게 거짓말로 상처를 주었던 일로 이어졌고 결국엔 그것이 후회로 남아
자꾸 기억에 맴돈다.
그런 생각에 젖어
터벅터벅 길을 걷던 분타는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 낯선 풍경에 당황하게 되는데....
<가마쿠라
소용돌이 안내소>는 6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자 다양한 고민을 안고 길을 잃는 순간 눈앞의 시계 상점 옆으로 표시된 '가마쿠라
소용돌이 안내소'라는 표지에 이끌려 지하로 내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오셀로를 하고 있는 쌍둥이 노인 '소토마키'와 '우치마키'에게
'멀어지셨습니까?'란 말을 듣게 된다. 처음엔 찾아가려던 곳으로부터 멀어졌냐는 물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또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에 젖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쌍둥이 노인에게 꺼내게 된다.
기묘한 상황에서
처음 본 쌍둥이 노인에게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주인공들은 소장님인 암모나이트가 알려주는 소용돌이 잔상으로 깨달음을 얻고 고민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꿈, 부모 자식
간의 기싸움, 결혼, 친구와의 우정, 열정, 당당하지 못한 채 도망쳤던 지난날에 대한 사과는 각자 이야기 속에 인물들이 묘하게 이어져있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데 '어? 어디서 봤는데!'하면서 지나온 이야기들을 들춰내다 보면 절묘하게 이어져있어 마치 보물을 찾는 듯한 즐거움마저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각자 다양한
연령층의 고민은 내가 지나오며 겪었던 이야기, 지금 겪거나 앞으로 다가올 이야기라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깨달음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다가와 생각지도 않은 기쁨을 누렸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