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부재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그로 인해 레이첼과 노라 자매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게 된다.
말로에서 간호사 일을 하며 살아가는 레이첼과 런던에서 조경 보조사를 하는 노라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가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 여행 계획을 했던 터라 금요일 일이 끝나고 노라는 언니가 사는 말로로 향한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 속 익숙한 언니의 집, 하지만 집 앞에 이르자 노라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어 노라의 삶을 뒤흔든다.
언니가 키우던 페노는 현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매달린 채 죽어있고 집안에는 언니가 피투성이인 채로 쓰러져 있다. 늘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자식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줬던 언니였기에 이미 심장이 멎어버린 언니의 모습을 노라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끔찍한 살인 사건 현장이 돼버린 언니의 집, 노라는 담당 경찰로부터 말로를 떠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숙소를 얻어 그곳에 머물며 언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배관공 키스와 15년 전 언니를 무자비하게 폭행했지만 결국 잡을 수 없었던 범인,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파혼한 언니의 남자친구, 그 외 언니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름대로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경찰로부터 언니가 말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계획이었으며 언니가 키우던 개 페노는 경비업체에서 교육을 받은 개라는 사실을 듣고 노라는 이 사건이 15년 전 언니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범인과 연관선상에 있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사건 기록을 훑으며 범인들을 만나는 한편 레이첼을 마지막으로 봤던 배관공 키스 주위를 맴돌며 증거를 수집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이들에겐 언니를 죽였다는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노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처럼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단서라면 언니가 죽기 전 노라에게 마틴이란 남자를 일요일에 만날 것이었다는 정도였지만 레이첼이 일하는 병원 관계자나 환자, 자주 가는 곳, 새로 사귄 친구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은 이름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노라가 의심받을만한 정황들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가는 추리물이라기보다 언니를 잃은 동생의 눈에 비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가족을 잃게 되면 남은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의 무게와 곁에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범인으로 간주하며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가장 가까운 누군가를 잃었을 때 남은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들은 지금까지 많았다. 하지만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는 오롯이 노라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간다. 노라와 함께 사건의 흔적을 쫓으며 불시에 떠오른 언니와의 기억에 가슴 아파하는 동생의 모습이나 단서가 될만한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막연하지만 그래서 더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지는 주변인들, 그러다 이게 작가의 뻔한 각본대로 노라의 정신착란 인건 아닐까란 의심이 들며 혼란스러워질 때쯤 작가는 전혀 다른 인물을 꺼내놓는다.
조사를 거듭하며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외모나 심리적 묘사가 상당한 양을 차지하는 영미권 특유함을 깨고 노라의 시선에서만 사건을 쫓으며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묘사 또한 군더더기 없이 표현되어 있어 예상치 못한 범인만큼이나 색다름을 선사해 준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