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뿌리
장수영 지음 / 북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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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랩book / 악의 뿌리 / 장수영 장편소설


2015년 현재, 준걸과 그의 아내 일매는 주인도 종업원도 나타나지 않는 갈빗집에 10분째 앉아 있다. 손님이라곤 옆 테이블에 가래침을 옹골차게 뱉는 아줌마와 자신뿐인 테이블에서 준걸은 배고픈데 왜 주인장이 나타나지 않을까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준걸의 조급한 마음을 짜증이라곤 하나 없는 천사 같은 얼굴로 일매가 달래며 앉아 있다.

어찌저찌해서 저녁을 먹고 나서는 길, 계산을 하는 일매에게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아 주문을 제대로 받지 않던 주인이 아는 체를 한다. 뭔가 사연 많아 보이는 아련한 눈빛의 주인장.

갈빗집을 나오던 준걸은 망사스타킹에 몸매 관리라곤 하나도 안된 아줌마가 묘하게 신경 쓰인다. 식당 알바가 나오지 않아 하루 대타로 불렀다던 아줌마는 노래방 도우미로 합석한 손님보다 술을 더 마시고 침을 뱉어내는 등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고 전혀 끌릴만한 외모도 아니었지만 그것과 달리 준걸은 계속 그녀가 신경 쓰인다.

그리고 현재를 거슬러 1972년 울산에서 태어난 준걸은 건설 현장 근로자로 일하는 아버지 덕에 풍족하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준걸이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잃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새벽같이 목욕탕 청소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인기척 없이 잠만 자던 아버지가 밥을 주지 않아 배를 곯던 준걸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곡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렴한 가격에 염습을 잘한다는 염장이를 불러 아버지의 시신을 정돈하던 중 거짓말처럼 아버지가 다시 되살아났고 어머니는 다시 살아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감사함에 울부짖는다. 하지만 다시 깨어난 아버지에게 영통한 신력이 생겼고 그 신기를 살려 부모님은 점집을 차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기가 빛을 발해 주변에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며 준걸의 점집은 돈을 세기 바쁜 부잣집으로 거듭나게 된다.

동네 외과 원무과장으로 일하던 일매 아빠와 간호보조원인 일매 엄마가 눈이 맞아 1980년 이란성 쌍둥이인 일매와 이현이 태어난다. 아들을 낳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먼저 태어난 일매보다 몸이 허약했던 이현으로 인해 시어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받아야 했던 일매 엄마, 그런 그녀의 화살은 어릴 때부터 일매에게 향했고 이후 줄줄이 태어난 남동생들을 일매가 업어 키우다시피하며 궂은 집안일은 일매의 몫이 된다.

자라면서도 몸이 허약하고 공부에 영 취미가 없던 이현과 달리 말랐어도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던 일매, 거기에 공부까지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일매로 인해 쌍둥이인 일매와 이현은 비교 대상이 되었고 먼저 태어나 장남의 기를 다 빨아먹은 년이란 소리를 들으며 일매는 더욱 엄마의 모진 말과 폭행을 당하며 성장하게 된다.

<악의 뿌리>는 2015년 준걸과 일매 부부의 현재와 그들의 성장기로 거슬러 올라가 준걸 부모님과 일매가 엮이고 어린 시절부터 항상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지만 성에 대해선 백치에 가까워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휘둘렸던 일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특히 일매 엄마가 딸에게 휘두르는 학대는 70년대 이야기를 보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80년대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지만 어쨌든 무시와 핍박을 감내하며 애정에 목말라 있던 일매의 어리숙함과 아버지의 신방에서 본 망사 스타킹으로 인해 그릇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준걸의 모습은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모에게 있음을, 나의 쾌락과 분노가 아이에게 그대로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음을, 자식을 키우며 평생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준걸과 일매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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