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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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신을 기다리고 있어 / 하타노 도모미 장편소설 / 김영주 옮김

상위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도쿄 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미즈코시 아이', 졸업하기 전 필사적인 구직활동으로 수십 군데 면접을 봤던 아이는 한군데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면접관의 성희롱으로 입사를 포기한다. 아직은 젊고 어떻게든 취직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취직하기는 힘들었고 그동안 면접 봤던 곳에서 눈높이를 낮춰 지원했지만 고배만 마셔야 했던 아이는 파견업체에 등록했고 문구용품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동자 파견법에 의해 제시된 파견 가능 기간인 3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아 정규직이 하지 않는 잡다한 업무와 점심시간을 침해받으며 일해야 하는 부당함을 참아가며 3년을 버텨냈다.

정규직 전환의 구두 약속을 했기에 아이는 그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만기 기간을 앞둔 시점 회사의 경영 부진으로 인해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별다른 항의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실업자 신세가 된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적지 않은 나이지만 파견직이 아닌 정규직이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지만 살던 곳의 월세조차 내지 못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12월 31일 아이는 집을 나와 홈리스가 된다.

그나마 값나가는 물건들은 진작에 팔아 생활비로 썼고 자잘한 물건들은 돈을 내며 버려야 했기에 아이의 짐은 여행 캐리어 하나면 족했고 모두가 연말연시 분위기에 들떠 있던 마지막 날 아이는 만화카페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그렇게 홈리스 생활을 시작한 아이, 파견업체에 등록해 공장에서 단순 업무를 하는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천 엔짜리 빵과 만화카페의 무료 음료로 저녁을 때우며 최소한의 돈만 쓰며 모은다면 몇 달 치의 방세를 마련하여 홈리스 생활에서 벗어나려던 아이는 카페에서 동갑인 마유를 만나 즉석만남 카페란 곳을 알게 된다.

첫날은 운이 좋게도 데이트만으로도 돈을 지불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지만 즉석만남 카페 자체가 성관계를 위한 중간 다리 같은 장소였기 때문에 데이트만을 시도하려는 남자는 많지 않았고 아이는 성관계는 물론 돈을 받고 데이트에 응하는 것조차 부담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제 그만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하게 되지만 자신과 처지며 말동무가 되어주는 마유로 인해 점점 일일 아르바이트보다 즉석만남 카페를 찾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정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몇 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자신에게 너무도 잘해주었기에 아이는 호텔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그동안 그 남자가 했던 말들은 거짓말이었고 방 안에서 돌변한 남자로 인해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간다.

대학이나 회사 같은 외부와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이 거리에 온 사람은

출구로 향하는 길을 금세 잃는다.

설령 나갈 수 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홈리스가 되어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칠만큼 지쳐있던 아이,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중학생이 된지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던 나기, 정신지체 증상을 보이며 제대로 된 생활이 가능하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팔아 두 아이를 부양하는 사치, 자신과 동갑이며 많은 의지가 되었지만 결국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버린 마유, 학생 때부터 문란하여 손가락질 받았던 유미를 통해 비록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랑조차 주지 않았지만 대학 때까지 집세와 대학비를 대줄 아버지가 있었기에 어쩌면 이들보다 생활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돈만 보내줬던 아버지, 엄마가 암 투병 중일 때도 병원을 찾지 않았던 매정한 아버지로 인해 부정이 뭔지 모르고 컸던 아이, 의지했던 엄마는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져 외로웠던 아이, 제대로 된 가정을 모른 채 자라야 했던 자신보다 홈리스가 된 후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가혹한 생활을 한 여자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동정보단 돈'이 더 필요한 것이 빈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창밖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 이상으로 죽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간다.

그런 생각을 해선 안된다는 걸 알지만 '배고파' 정도의

가벼움으로 '죽고 싶다'를 느낀다.


단순히 여성 홈리스가 처해있는 극한의 상황을 다룬 소설이란 생각에 <신을 기다리고 있어>란 제목이 여성 홈리스들이 현실적으로 처해진 가혹한 상황에 무언가라도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을 기다리고 있어>란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온다. 여고생이기에 아이처럼 만화카페에서 잘 수도 없어 매일같이 극장 앞에서 남자를 찾아 밤을 새워야 하는 나기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해서라도 안락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는 남자를 '신'이라 표현하는 장면에선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일본에선 그것이 은어로 통한다고 하는데 역시 다시 들어도 현기증이 일수밖에 없는 그 말에 극중 나기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나라 여성 홈리스들의 생활을 찍은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숨 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 아닐까란 생각과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은 자신의 탓이라며 이기적 의미를 부여했던 나로서는 개인적인 관점보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됐던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사람들의 냉대보다 실제적인 해결책 없는 어쭙잖은 동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들을 아프게 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홈리스에게 모든 이들은 그저 사치의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싶은 다른 일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돈벌이만 생각하고 살아온 사이에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중요한 감정이 결여되어버린 걸까.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겨선

안되겠지만 인생에는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걸 망각하면 돈도 벌 수 없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삶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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