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호러 문학에 스티븐 킹과 함께 지대한 영향을 끼친 '리처드 매시슨', 사실 호러나 SF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지라 '리처드 매시슨'이란 작가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읽었던 중국이나 일본, 우리나라의 호러나 SF와는 어떻게 다를지 작가의 무게만큼이나 궁금하게 다가와졌던 것 같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두께는 꽤 두툼하지만 길지 않은 33편의 단편집 속에 호러나 SF 등 지금껏 만났던 작품과는 다른 다양함을 만날 수 있기에 꽤나 인상적인데 일단 처음 접해보는 작가라 그런지 첫 단편집부터 '이거 뭐지?'싶은 내용에 어리둥절해 퍼즐 조각을 끼워맞추듯 이리저리 끼워맞추는 재미를 발견해 두번째 이야기부터는 긴장하고 읽었던 것 같다.
처음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는 여덟살 밖에 안된 아이가 쇠사슬에 묶인 채 지하에 감금되어 있는데 바로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을 흉측한 괴물이라고 말하며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 어느 날 웅성거리는 소리에 문 밖에 나섰던 아이는 자신을 발견한 아빠에게 끌려가 구타 당한 뒤 다신 문밖에 나오지 말라는 협박을 받는다. 자신이 갇혀 있는 지하가 어둡고 음침한 곳이라면 지하실 밖은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 웅성거리거나 웃음짓는 소리로 뒤덮여 있는데 어린 아이가 철저하게 감금당해 학대당하는 장면에 가슴이 답답해지다가 마지막엔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죽이는 자라는 인형을 자신의 생일에 사온 주인공은 서른살이 넘었지만 엄마의 과보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남자친구와 생일을 보내기로 했지만 그것마저 무산된 상황에서 처키같이 돌변한 인형에게 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는 <사냥감>과 탱크와 장갑차, 부대를 순식간에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물리치는 일곱명의 괴물인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녀 전쟁>, 새 아파트이며 특별히 준비할 것 없이 갖춰진 아파트가 임대료까지 저렴한 곳에 이사한 부부, 하지만 어느날부터 아내는 남편에게 관리인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내의 말을 크게 신경쓰지 않던 남편은 어느 날 아내가 지하실에서 로켓트용 엔진을 봤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확인하러 내려가게 되는데 그동안 아내가 했던 말들이 다 사실로 드러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파트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깔끔한 집>, 사막 한가운데 있는 카페에 들른 부부는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카페에서 다시 만나기로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남편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내는 결국 남자 화장실을 찾아보지만 그곳엔 남편이 없다. 그들이 타고 온 차는 그대로인데 남편은 증발한 듯 사라져버린 이야기 <사막 카페> 등 낯설지 않은듯하면서도 곱씹다보면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긴 분량이 아닌 호러나 SF 장르의 다양성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다가왔는데 매 단편이 끝날 때마다 더듬어 생각해보게 유도하는 내용들이 많아 꽤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