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마흔의 검사와 결혼한 마미는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고 연호, 연우를 낳고는 집을 나가 미군을 따라 미국에 가버렸고 아버지 서용걸은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간다며 마미와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은 채 연호와 연우를 도우미들 손에 크게 내버려 뒀다.
직장에서는 정의롭고 검사의 직함에 걸맞게 귀감이 가는 동료였지만 집에 오면 서용걸은 폭군으로 변했다. 특히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날은 있는 꼬투리 없는 꼬투리를 잡으며 연호를 벨트로 다스렸고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시달리던 연호는 포기하고 체념해야 할 때를 스스로 체득하며 자라났다. 하지만 아버지 용걸은 연호와 달리 여동생 연우는 때리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해 죽고 싶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남겨질 연우를 생각하며 참고 또 참으며 버텨냈다.
그렇게 철없고 이기적이기만 한 엄마의 빈자리와 두 얼굴의 폭군 아버지를 둔 연호, 연우 남매에게 어느 날 여동생 지민이가 생겨났고 그렇게 지민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끔찍한 사고를 기점으로 가족들은 돌이킬 수 없이 와해되버린다.
그리고 연호와 연우 남매에게 붙어 가족처럼 굴던 연호 친구 민수는 14년이 지나 지민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고 친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형사가 되었지만 삶에 지쳐 남겨진 연우와 지민을 돌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14년 전 연호의 어린 동생 지민이가 잔인하게 성폭행당해 겨우 목숨을 건졌고 지민이의 성폭행범을 찾겠다던 아버지 서용걸 검사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으며 친구인 연호는 행방불명된 사건, 지금은 미제 사건으로 경찰서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사건은 연우가 선생으로 근무하는 안곡북고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점점 수면 위에 오르게 된다.
반면 여섯 살 동생 지민이가 잔인하게 성폭행 당한 뒤 아버지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고 오빠는 행방불명된 시점에서 지민이를 돌볼 사람은 연우밖에 없었고 지민의 불행한 사건에 덮쳐 통증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지민의 희귀병으로 인해 많던 재산은 금세 동이 나버린 현재, 연우는 안곡북중을 거쳐 안곡북고로 옮겨왔지만 융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교장과 교감의 눈밖에 나 고3 담임은 물론 과하게 주어진 과목 시간 등으로 죽고 싶을 만큼 살인적인 나날을 보내게 된다.
융통성이 없어 원리원칙을 지키는 연우였지만 과하게 주어진 일들과 자신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처럼 달려드는 아이들 속에서 지민의 병원비와 약 값을 감당하기 위해 버텨냈던 연우를 중심으로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들, 그 사건들의 배경이 되는 곳이 학교라 소설에서는 학교 시스템과 점잖고 교양 있는 교직원들의 파렴치한 욕망과 민낯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 또한 대학입시라는 경쟁 구도 속에서 필요에 의해서만 친구 관계를 맺고 부모님의 직위, 학교 내에서 보이는 모범생의 이미지를 악용한 아이들의 교묘한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학교, 학생, 학부모, 교직원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여다보게 되는 소설 <달팽이>, 이미 소설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게 다가오는데 소설의 모든 내용이 허구가 아닌, 이미 우리가 뉴스에서 접했던 내용들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뒤늦은 충격이 전해졌던 것 같다.
책의 주제가 학교라서 아이와 함께 볼 청소년 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차마 이 끔찍함을 아이에게 보여주기가 어른으로서 혼란스럽고 부끄러워져 함께 읽을 순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