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업을 시작해 호텔업계로 발을 넓힌 '야나기사와 家'의 부지 안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녹나무,
지름이 5미터, 높이도 20미터를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한 녹나무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간절히 염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낮에는 아무나 찾아와 녹나무 안에 있는 구멍에 드나들어도 상관없지만 밤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야나기사와 家'의 절차대로 엄선된 사람들의 염원을 비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녹나무 아래 위치한 종무소에서 '녹나무 파수꾼'이 신성한 녹나무를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야나기사와 家'는 물론 '녹나무', '녹나무 파수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한 청년이 인연이 되어 '녹나무 파수꾼'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엄마, 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나오이 레이토', 밤에 클럽에서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레이토를 키운 것은 할머니였고 친구들처럼 부모님과 함께 소풍을 가거나 놀이동산에 간 기억이 없는 레이토는 눈 뜨면 자는 엄마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갈 채비를 하느라 몸단장을 하는 엄마의 모습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유방암으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어렵게 산 레이토는 대학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식품회사 기계를 만지는 일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실수가 아님에도 누명을 쓰고 타부서로 발령이 나 불만에 차있을 무렵 친구의 소개로 클럽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오래 버텨내지 못한 레이토는 중고품 공작기계를 취급하는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지만 역시 그 곳에서도 오래 일하지 못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레이토는 한밤 중 몰래 공장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다 '주거 침입, 기물 파손, 절도 미수'라는 죄목으로 경찰에 잡히게 된다.
그리고 경찰서에 잡혀 있는 레이토에게 '이와모토'라는 변호사가 찾아와 의뢰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경찰서에서 빼내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던 레이토는 제안을 수락했고 이와모토의 의뢰인인 '야나기사와 치후네'를 만나게 된다.
'야나쓰 코퍼레이션 고문'을 맡고 있는 치후네와 첫 대면을 한 레이토는 그녀가 어머니의 이복 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경찰서를 빼주었던 조건으로 녹나무 파수꾼이란 임무를 맡게 되어 종무소에 기거하며 녹나무를 관리하게 되는데....
녹나무 파수꾼이란 직함을 받았지만 그믐날 밤과 보름달 밤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비는 기념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레이토, 치후네에게 들은 건 예약된 손님에게 밀랍초를 주고 기념이 끝나면 불이 잘 꺼졌는지 확인하는 것과 근처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녹나무에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손님들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파수꾼의 일이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 찾아가라는 치후네의 뜻에 따라 레이토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손님들과 함께 파수꾼으로써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몇백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녹나무의 기원, 신성한 나무라는 믿음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그 영험함까지 자자한 녹나무에게 기념하는 사람들, 레이토는 염원을 빌기 위해 녹나무를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바람을 지켜보며 신비로운 경험과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클럽 종업원의 불륜으로 태어난 자신의 숨기고 싶은 출생을 통해 오해했던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녹나무 파수꾼>이란 제목을 보고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아 무슨 내용일까 궁금증이 더욱 커졌었는데 거대한 녹나무 안에 커다란 구멍을 통해 사람들이 염원을 비는 장면을 보자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했던 나무가 저절로 연상되어 거대함에서 느껴지는 두려움보다 정감어린 따쓰함이 더 많이 전해졌던 것 같다.
자신의 바람을 후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윗 세대와 그 염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랫 세대의 이야기 속에서 지금까지 미천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출신을 뛰어넘어 대활약을 펼치는 레이토의 모습은 가진게 없고 배운게 없어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마음을 충분히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또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행복한 비명을 선사해주었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자연속에 우뚝 솟은 거대한 녹나무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사람들의 믿음이 한데 뭉쳐 신비함을 선사한 이번 이야기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잇는 따스함으로 꽤 오랫동안 잔잔한 감동으로 남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