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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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출판 /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권남희 지음

같은 소설이라도 번역가의 역량에 따라 소설의 느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잔혹한 평가일지는 몰라도 얼마 전 번역가의 빈약한 번역으로 인해 꽤 유명한 일본 작가의 글이 엉망이 되는 것을 보면서 번역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전에는 그저 소설 속 인물들 상황에 알맞은 어휘를 찾아 적절히 배치하면 되는 것이 번역이라고 생각했다면 얼마 전 경험으로 작가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을 잘 살려내는 것 또한 번역가의 자질이란 것을 느끼면서 번역가의 또 다른 매력과 대단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번역가의 삶은 어떠할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궁금증에 시기적절하게도 권남희 번역가님의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에세이를 만난 건 인연이라고 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권남희 번역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무레 요코 등 일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평소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로 탄탄한 번역 스킬을 자랑하는 분이다. 평소 일본 소설을 좋아하고 출간하는 모든 작품은 예의 주시할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가 여럿 있기에 신간이 나올 때마다 출판사보다 먼저 찾게 되는 것이 어떤 번역가가 번역을 했느냐인데 좋아하는 작가 중 '무레 요코' 의 소설은 여러 명의 번역가가 번역을 했기 때문에 작품의 이야기만큼이나 번역가마다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발견하는 즐거움 또한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것 같다.

아무리 그 작가만의 문체를 번역했다고 해도 작품을 번역한 작가 특유의 삶을 통한 위트가 전해질 때가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이분은 번역가이지만 글도 잘 쓸 거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을 끝내고 소설 끝에 남기는 글을 통해 번역가들의 필력을 가늠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번역가들의 필력은 역시 고수다운 무언가가 있다! 였었다.

그리고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에서 권남희 작가님은 나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말 한번 섞어본 적 없지만 가히 추종자 대열에 끼게 될 듯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나는 가식의 탈을 쓴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사회적이지 못해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 자신을 사교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부끄러워하지는 않는 성격인데 그래서 그런지 털털하고 진솔해 보이는 번역가님의 에세이가 더 가슴 잔잔하게 다가와졌는지 모르겠다.

신문에 기사가 실린다고 말했지만 한 달이나 지나 신문을 찾아보는 부모님과 울음 코드가 안 맞는 딸과의 에피소드, 한일 감정을 허무는 일본 아줌마들의 진한 우정 이야기, 번역 일을 하면서 출판사 직원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 노령견 나무와의 일상 이야기까지.... 이 한 권을 읽고 나니 나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사람이 왠지 옆집 사는 이웃처럼 편하게 다가와졌다면 너무 오지랖일까?

그리고 참 대단하게도 긍정적인 그녀를 보면서 뭔가 자극을 받아 감사한 마음과 비루함을 자기애라고 착각하며 버리지 못했던 얄궂음까지 반성하며 에세이 마지막에 실린 <츠바퀴 문구점> 무대가 되었던 가마쿠라 여행을 버킷 리스트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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