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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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출판사 / 도쿄 타워 / 에쿠니 가오리 지음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를 읽기 전까진 오랫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비에 젖은 <도쿄 타워>를 떠올렸더랬다.

20대 시절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 그녀의 소설을 다 읽어봤던 나로서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도 보았지만 아무래도 응축된 밀도의 그녀의 문체가 영화에 다 녹아들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게 남았던 기억이 있는데 벌써 15년도 지난 추억의 <도쿄 타워>를 다시 읽으니 20대 때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생겨나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단둘이 도쿄타워가 보이는 맨션에 살고 있는 '토오루', 잡지 편집장 일을 맡아 늘 바쁜 토오루의 엄마로 인해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토오루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조용히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토오루가 열일곱 살이던 2년 전 어머니 소개를 통해 '시후미'를 알게 된다.

사업가의 남편과 그녀 또한 샵을 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시후미는 아이가 없어 저녁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었고 운동을 싫어했지만 먹는 양이 적어 군살이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토오루처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시후미는 책 이야기는 물론 전시나 공연 이야기를 공유하며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토오루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조용히 듣고 웃어주는 시후미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게 소중하다.

토오루의 유일한 친구인 고등학교 동창생 코우지, 개인 병원을 하는 아버지와 제법 나이차가 나는 큰형 또한 의사 일을 하고 있어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털털한 청년이다. 쪼들리진 않지만 즐겁게 살기 위해 대학 생활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연달아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코우지는 현재 몰래 만나는 유부녀 '키미코'와 연하의 여자친구 '유리'를 만나며 더욱 바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항상 시후미를 기다리는 것은 토오루의 몫으로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정해진 시간에 걸려 올 시후미의 전화를 기다린다. 몇 주동안 만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기도 하고 만나던 바에서 갑자기 만나자는 약속을 던기지도 하는 시후미, 그렇게 마냥 기다리는 일도, 한두 시간 동안 자신과 만나고 곧장 남편에게 향하는 시후미를 보는 것도 토오루는 점점 마음 아파지지만 그런 감정들은 시후미의 얼굴을 보면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토오루는 점점 시후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지 못하는 현실 속에 슬픔과 공허함은 모두 자신의 몫인 것 같아 시후미를 보지 못하는 시간 동안 괴로워하게 된다.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 중간엔 자신의 아파트에서 유리와 밀회를 즐기고 오후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키미코를 만나는 코우지,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키미코는 문화센터를 다니며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 아이가 없지만 남편에게는 좋은 아내이기를 바라는 그녀는 요리는 물론 몸매를 가꿀 플라멩고, 어학 등 코우지 못지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코우지와 모텔에서 밀회를 즐길 때면 팜 파탈로 변신해 코우지를 꼼짝 못 하게 만든다. 하지만 점점 자신에게 변덕을 부리는 키미코로 인해 곤란해질 때가 많아지면서 점점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코우지, 그런 코우지 앞에 고등학교 친구인 요시다가 나타나면서 여자친구인 유리와의 사이도 삐걱대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음에도 남편에게 그녀를 빼앗아 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 토오루, 그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토오루가 결정한 것은 그녀의 샵에 취직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사이를 눈치챈 엄마에게 집을 나가란 소리까지 듣지만 토오루는 시후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차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코우지는 키미코에게 보기 좋게 차이고 연이어 여자친구인 유리에게도 차인다. 가끔씩 키미코에게 연락하고 싶은 감정일 일긴하지만 잘 참아내며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코우지,

각기 다른 사랑법을 보여주는 스무 살 청춘 토오루와 코우지는 우연찮게도 나와 태어난 해가 같다. 만 나이로 마흔이 됐을 그들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토오루는 시후미와의 관계를 그대로 지속하며 살고 있을까? 토오루가 마흔이라면 시후미는 예순일 텐데 그럼에도 지고지순하게 시후미만을 마음에 담아두며 그 애틋함과 아련함을 오롯이 견뎌냈을까? 뭔가 눈치채고도 남았음이 있지만 토오루를 무던하게 대했던 시후미의 남편은 아무런 반격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증폭하는 토오루와 달리 코우지는 왠지 견실한 샐러리맨이 되어 가정을 꾸미고 살 것 같다는 예상이 든다.

스무 살 적 <도쿄 타워>를 읽을 땐 토오루보다 코우지의 모습이 더 위태롭고 위험해 보였었는데 지금은 코우지보단 토오루가 더 위태롭게 보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엔 불륜 애정행각을 미화한 소설이란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현실에선 비일비재한 일을 소설이라고 더 엄격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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