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을 사며 잊고 싶은 기억을 못내 잊지 못해 괴로워하며 살기도하고 반대로 너무도 힘든 기억이기에 그것을 허황된 기억으로 날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체로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떠오르는 부끄러움에 다시 기억 저 속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이미 PIN 시리즈를 읽어봤던 독자라면 가벼운 분량에도 결코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작품들임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22번째 PIN 시리즈인 <메모리 익스체인지> 또한 제목부터 가볍게 다가오지는 않아 내심 이번 작품은 어떤 강렬함을 줄까 꽤나 궁금했던 작품인데 기대보다 훨씬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핵융합 반응으로 태양이 팽창하고 그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별이 지구곁을 통과하면서 지구는 태양계로부터 튕겨져 나가 유령별이 된 어느 시점, 지구가 유령별이 되기 전 니키 가족은 이미 살 수 없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향하는 비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화성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약속했던 업자는 찾을 수 없었고 이미 전재산을 팔아 비행선 티켓을 구했던 니키 가족으로서는 화성에서 화성인으로써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아이디얼 카드가 없기 때문에 지구인들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한발작도 나갈 수 없는 감금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유일하게 그 곳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인 '메모리 익스체인지'를 통해 화성에서 파산신고를 받은 자와 기억을 바꿔 화성인으로 거듭나는 제도가 있었고 갇힌 공간에서 생활하던 지구인들은 점점 메모린을 신청하며 감금되어 있던 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메모리화 되어 화성인으로 거듭난 지구인들이 화성인으로 거듭나며 누리는 혜택들에 동요된 엄마가 먼저 메모린을 신청했고 끝내 자신의 지구인을 버릴 수 없었던 오빠는 자살을 결정하며 니키의 가족은 와해되기 시작한다.
결국 홀로 남아있던 니키도 메모린을 신청하여 화성인이 되었고 자신이 지구인으로써 살았던 기억을 화성인과 교환되며 심어진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십년동안 수용소에서 지낸 반다, 하지만 이따금씩 열다섯 나이였던 그가 45년의 세월을 건너 뛴 뒤 일흔의 노인이 되어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수용소에서 내보내지는 온갖 전파에도 현재 자신의 모습이 아닌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오랜 기억속에서 떠오른 '니키'란 이름을 찾아 수용소를 탈출하기로 한다.
지구인과 화성인의 메모리 익스체인저를 시술하는 도라, 체인저 역할에 워커홀릭하며 사생활은 없는 생활을 하는 도라는 늘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더욱 일에 몰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인 체인저 역할에서 이따금씩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탈출한 반다는 메모리칩을 통해 도라에게 찾아오게 되고 이들에게 충족될 수 없었던 생활 밑바탕에 있었던 먼 기억을 서로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살 수 없어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탈출했던 니키 가족, 전혀 모르는 곳에서 지구인들을 미개인 쳐다보듯 하는 그들의 시선과 메모린이 되지 않고서는 그들의 생활에 섞일 수 없는 지구인이란 존재는 아주 먼 미래를 나타내는 SF 소설처럼 다가오지만 삶을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린 이들의 무력감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과 난민 사태를 보며 공감과 이타심보다 난데 없는 민족감을 드러내며 울타리를 쳐버리는 배타심에 씁쓸해지는 광경들이 니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