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책 소개를 보고 처음으로 박완서란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 글들이 이십년이 지나 미처 내뿜어내지 못한 호기를 가다듬어야 할 정도로 가슴벅찬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에 남다른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왜 그땐 알지 못했을까, 아니 왜 그 땐 그 글들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까 자문해본다. 하지만 지금에서라도 내 생애 이런 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미처 알아보는 시간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작년 작가정신에서 출간된 박완서 작가의 짧은 글들을 모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보고 그녀의 글에 매료되었었다. 다양한 단편집 안에는 나의 할머니,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같은 시대를 숨가쁘게 살아냈던 그녀들의 일생을 보는 듯해 생생하게 다가왔다. 젊을적엔 들어도 관심없이 지나쳤던 그 이야기들이 그녀들이 이야기를 쏟아냈던 나이대가 되니 새삼스럽게 진한 여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강해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야기 속엔 박완서 작가가 분연했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여인들이 살아냈던 일상들이 녹아 있어 때론 오롯이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성을, 때론 불합리적인 상황에 대한 분노심이, 때론 다음 세대를 제시해줄 미래상을 엿보게 되었는데 이번에 만나게 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그녀가 작가로서 발을 내딛었던 <나목>부터 연재작과 동화책 등 여러 출판사와 절판, 개정판을 반복하며 책 서문이나 맺음글에 실었던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만을 모은 특별한 책이다.
박완서 작가에 이제 막 빠져든 독자로서 아직 접해보지 목한 작품들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고 그간 여러 출판사에 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마다 각별한 그녀의 모습 또한 엿볼 수 있어 색다르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박완서 작가의 팬이라면 더욱 뜻깊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 왠지 모를 뭉클함까지 느껴졌는데 가식과 입에 발린 말이 아니면서도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드는 욕심 앞에서도 한사코 그것을 문체에 유희를 두지 않고 그대로 글로 풀어냈다는데 또 한번 그녀의 곧은 성격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김훈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쓸 수 있을까 꽤 감탄하면서 읽곤하는데 뒤늦게 읽게 된 박완서 작가의 글에서도 같은 감탄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고 세간의 잣대로 마흔이란 나이에 주저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생각해 본다.
더불어 책 후반에 그녀의 작품 연대와 출판사마다 실렸던 다양한 작품집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다가와 박완서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