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에 온 편지
김래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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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이엔티 / 환절기에 온 편지 / 김래임 장편소설

엄마가 강조하는 수도권 대학보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과가 있는 지방권 대학을 나온 수아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청년 사장님이 되어 바쁜 나날을 보낸다.

3D 피규어를 만드는 Bon 스튜디오의 대표였던 봉수아는 자신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열심히 뛰었고 제법 돈벌이를 하며어 부모님 집 평수를 넓혀드렸고 자신은 외제차를 굴리며 직원들 월급 밀리지 않게 일을 했지만 3년을 기점으로 기대했던 계약들이 불발되면서 27살의 젊은 사장에서 평범한 알바생이 된다.

어찌어찌해서 직원들 퇴직금까지 마련해주면서 떠안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 3D 기계들을 팔고 애지중지하던 애마까지 팔아도 해결이 안돼 발만 동동 구르던 수아에게 임성혜 전 국회의원의 전 보좌관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1953년생으로 일흔에 가까운 나이로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대모로 알려져 있는 임성혜 의원의 전 보좌관은 수아에게 그녀의 외할머니인 유은옥 여사와 관련된 일임을 얘기하고 엄마가 직접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아는 엄마를 대신해 임성혜 의원을 만나게 된다.

어릴 적 수아는 친척들로부터 외할머니가 철이 없어 툭하면 집을 나가더니 급기야는 애까지 낳아 데려온 끼있는 여자라는 숙덕거림과 엄마를 향한 냉랭함을 기억하고 있지만 엄마가 스무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만나게 된 임성혜 의원은 외할머니와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이야기를 시작하며 외할머니가 생전에 썼다는 일기장을 수아에게 건네준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 담긴 일기장, 그 속에서 수아는 할머니가 그 시절 여자는 중학교만 나와도 부모로서 할 도린 다했다는 통념을 깨고 배우고 싶은 열망이 대단하여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랬으나 차일피일 미뤄진 아버지의 거짓말로 동생 뒷바라지만 시키는 것에 대한 반기로 가출을 선택해 서울로 향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농촌 봉사 활동을 왔던 서울 오빠를 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찾아간 하숙집에서 정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장에서 일하는 정애를 찾아간 은옥은 비좁은 방에 몰려 자는 사람들을 보고 정애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여차장 일을 구해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 생활은 팍팍하고 고단한 일 투성이었으나 그렇게 번 돈은 꼬박꼬박 시골에 보내며 동생 뒷바라지 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은옥은 서울 생활에 지쳐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오게 되고 자신이 있던 빈자리를 대신해 무성했던 소문을 듣게 된다. 진학은 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는 생활, 어떻게든 올라가려고 발버둥칠수록 이상과 멀어지는 괴리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은옥은 아버지가 알아온 부잣집 식모살이를 시작하게 되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모님을 정성껏 돌보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정성껏 돌보던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후 사모님의 남편이었던 사장님과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얘기를 시작으로 은옥은 동생의 월사금과 사장님이 몰래 주었던 보너스를 가지고 두번 째 서울 가출을 시도한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 번 돈을 동생 학교 보내고 부모님 생활비 쓰며 정작 자신에게는 한푼도 쓰지 못했던 은옥은 머리도 하고 청바지도 사입으며 맘껏 분위기를 내려하지만 아차하는 사이에 가진 돈을 도둑맞게 되고 그렇게 서울 생활이 시작된다.

공장에 다니는 정애와 함께 일하게 된 은옥은 24시간 화장실도 못가며 재봉틀을 돌려야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것이 주어진 숙명인 양 일을 하면서 서울대생이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꿔보려는 진취적인 임성혜를 만나게 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었지만 사측의 방해공작으로 수세에 몰리게 된 이들은 회사는 물론 정부에게도 찍혀 빨갱이로 몰리게 되고 급기야 선거날엔 똥물까지 뒤집어쓰는 수모와 쓸모없는 계집애들이란 오명을 쓰며 삶의 희망을 놓게 된다.

수아는 할머니가 써내려간 일기를 틈틈이 읽는 대신 기존에 일했던 호텔에서 다시 알바 생활을 하며 자신이 회사를 꾸릴 때 만났던 업체에 면접을 보지만 고배만 마시면서 또 다른 인생을 배우게 된다.

<환절기에 온 편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27살의 청년 사업가에서 백수가 된 봉수아와 1970년대를 살았던 할머니 유은옥의 생전투쟁기를 담고 있다. 몇 십년의 간격을 두고 장녀라는 이유로 집안일과 동생을 책임지는 수아의 모습은 할머니였던 유은옥이 짊어져야했던 부담감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오버랩된다. 자신의 희생을 미덕인 양 세뇌시키며 가족을 부양했던 수 많은 은옥과 정애, 왜 남자는 배움에 정진해야하고 여자는 집안 살림을, 동생을 부양해야하는 입장에 처해져야만 했던 것인지 지금 와서 그걸 묻는다면 의미가 없겠지만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오는 수아의 모습에선 왜?라는 반문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던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는 현재를 살아가는 딸들을 보며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을 하고 그 말에 딸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뇌를 피력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많은 고통을 짊어지면서 그들이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들면서 같은 여자로써 느껴지는 동질감이 배가 되어 전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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