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퇴폐적인 인상마저 주는 호피 무늬를 좋아하는 해미는 종종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곤한다. 그런 해미가 일하는 미용실에 아이와 함께 오지만 항상 말 없이 책만 보는 여자가 8개월 째 오지 않고 있어 이따금씩 궁금해지곤 한다.
일 때문에 바쁜 은정은 휴가를 좀체 낼 수 없어 시부모님에게 서균이를 맡겼고 시부모님에게 맡겨진 서균은 교회 모임에서 눈썰매장을 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의식이 없다. 일이 바빴기에, 일을 하느라 아이를 뒷전으로 미뤄뒀던게 사무치게 후회로 남을 줄 은정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해미가 일하는 미용실에서 일하던 지현은 열이 나 몸져 누워 미용실에 나오지 못하는 해미집으로 향하는데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8개월전부터 안보이던 여자가 얼마전에 미용실에 와 아이가 아프다며 펑펑 울더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정작 어떤 인연도 없었던 지현에게 은정이 꺼낸 이야기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미안함으로 남게 되었고 지금은 아파서 당장 볼 수 없는 서균이와 은정이를 맘충이로 봤던 그때 일이 떠올라 더 괴롭다.
진경은 딸 율아로부터 서균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 진경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세연이 왜 자기의 페북 이야기에 그저 좋아요만 누르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지 조바심이 날 정도로 궁금하다. 그동안 만나자고 하면 약속이 있다거나 몸이 안좋다며 약속을 잡지 않는 세연을 보며 진경은 무엇이 세연의 마음을 저렇게 닫게 만들었을까 내내 궁금하다.
아이는 없었지만 촬영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많았던 윤슬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남편은 집안일은 물론 밖으로만 도는 윤슬과의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며 이혼했고 포토그래퍼였던 윤슬은 남자 선배와 공동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선배 몰래 주말마다 알바를 했는데 결국 그게 화근이 되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들이대는 헤픈 여자로 소문이 나 모든 것을 접고 시골 부모님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윤슬은 오랜만에 진경을 만나 세연이와 진경의 교련시간 붕대감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학교 교수인 경혜는 자신에게 다가온 쾌활한 성격의 제자 채이가 당돌하지만 싫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대학교 후배 교수에게 추행을 당했다며 채이가 고발 대자보를 게재하면서 후배를 두둔할 수도, 채이를 대변할 수도 없는 입장에 처해진다.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자신이 유일하게 잘하는 글로써 대자보를 붙여 채이를 지지했지만 그것은 양쪽 입장을 더 냉담하게 할 뿐이다.
세연은 외모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땐 여드름을 지우기 위해 화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대학생이 되면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의 미적 감각에서 떨어진 별스런 인종이란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항상 자신의 곁에 있었던 진경은 대학생이 되면서 남자가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굴며 자신은 진경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문과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대학교 졸업 후 어떤 신념이 있다기보다 버티다보니 저절로 커리어가 쌓이게 되었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세연을 롤모델로 본다는 것을 알면서 마음이 불편하다.
<붕대 감기>는 진경과 세연의 이야기가 중심인 것 같지만 그녀들을 둘러싼 주위의 수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호피색을 좋아하면 싼티나거나 헤퍼보이는 선입견이 못마땅한 해미와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아프거나 잘못되면 모든 잘못은 엄마에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시선, 아이는 없더라도 워커홀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합리한 오해를 받는 상황과 단지 화장 하나만으로 여성이라는 성을 벗어던진 것이라는 관점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사회와 사람들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 자기에게 닥친 불합리함에 순응하면서도 깨려하고 모순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그 모순에 대항했다가 SNS상에서 이분법적인 논리로 공격당해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세연이 고등학교 때 화장을 하면 날라리로, 대학생이 되면서 화장을 하지 않으면서 별종으로 취급받는 이야기는 여자라면 다들 공감할텐데 화장 하나로 극과 극으로 갈리는 열띤 논쟁을 생각하면 그저 공감에서 지나칠 수 없음에 씁쓸함과 부담감이 함께 들었던 것 같다. 사실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의견 각각에 반박할 마음은 없음에도 너무 상품화된 미의 기준이 되는 것 같은 씁쓸함과 그렇다고 너무 꾸미지 않아 추레해보이는 모습은 사실 나도 모르게 반감이 가는게 사실인지라 소설을 읽기 전에도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아이와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던 부분인데 소설 속 세연의 이야기를 보면서 '왜 화장 하나로 여자들이 이렇게 열띈 논쟁을 펼쳐야하는거지?'라는 생각도 언뜻 스쳤던 듯하다.
예민하기도하고 주제 하나만으로도 공격 대상으로 삼아질 수 있어 주장을 내기에도 조심스러움이 있지만 사실 주장을 낸다기에도 나조차도 정립되지 않은 생각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공감은 되지만 밤새 풀어도 풀 수 없는 수학 문제를 푸는 듯한 허탈감이 함께 들어 좀 더 고민을 더 해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