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편도 내지 못하는 소설가들이 많은 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해마다 꾸준히 2~3편의 작품을 내놓는다. 팬들 사이에서도 다작을 내놓기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독자들도 그가 지금껏 내놓은 작품을 다 읽었다는 독자는 나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작을 읽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새롭게 출시되는 책들로 인해 독자에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교통경찰의 밤>은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그의 초기작이라한다. 그랬기에 아직은 낯설고 왠지 미흡해보이는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싶었던 <교통경찰의 밤>은 초기작이라고하기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성을 갉아먹지 않는 단단한 작품이다. 그가 데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놓은 작품이기 때문에 지금의 교통상황하고는 다른 면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의 탄탄함은 역시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 책은 총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교통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로 뉴스나 주변, 때론 내가 겪었던 분통 터졌던 교통 관련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 공감이 갔던 것 같다.
사거리에서 승용차끼리 부딪친 사건, 다행히 한 승용차의 탑승자들은 무사한 반면 경승용차에 탔던 운전자는 빈사의 상태라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고 사건 현장에서 벌어지는 조사에서 탑승자들은 서로 파란불일 때 건넜다고 주장한다. 조사관인 진나이는 서로 상반된 주장 속에 앞은 보이지 않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와 신호등의 신호 주기를 따지며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의 진술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반대편 승용차의 차주를 의심하기 시작하는데....비록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신호를 위반하고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오빠를 죽음으로 몰고 간 운전자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응징하는 이야기 '천사의 귀'
잘사는 사모님의 잘못된 운전 습관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불러온 결말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던 한 가정을 슬픔으로 몰아넣게 되고 그에 대한 똑같은 응징에 나선 배우자의 이야기를 담았던 '중앙분리대'
한적한 도로, 늦은 야근을 마치고 지름길로 빨리 귀가하고 싶은 운전자는 앞에 초보딱지를 붙이고 천천히 운전하는 차량을 짜증스럽기만하다. 그런 기분으로 앞차에 상향등을 비추기도하고 바짝 따라붙어 겁을 주면서 주행하던 중 자신으로 인해 앞차는 커브길에서 미끄러져 사고가 나게 되고 바짝 따라붙던 운전자도 앞차를 살짝 박게 되지만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급히 그 자리를 뜨게 된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앞에서 달리던 운전자는 기억을 잃게 되고 예상치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일어나며 그는 자신이 벌이지 않은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위험한 초보운전'
여자친구와 연초를 보내고 신년 인사 차 절에 가기 위해 차로 향한 주인공은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차가 긁혀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다. 누가 긁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차 수리 견적을 받는데 얼마 후 자신이 차를 긁었다며 자수를 해온 사람이 직접 연락을 해와 차 수리비를 주겠다고하여 주인공은 날라갈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우연이라고하기엔 의외의 장소에서 자꾸 그 사람과 부딪치게 되면서 뭔가 찜찜함을 느끼던 주인공은 그 사람의 배려 덕분에 여자친구와 스키를 즐길 별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데....왠지 모를 찜찜함이 가져온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는 '건너가세요'
결혼 인사 차 여자친구집에 들렀다 올라오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여자친구는 무언가에 맞아 급히 병원에 옮겨지지만 앞차에서 버린 커피캔으로 인해 실명을 하고 만다. 억울한 마음에 증거물이 될 커피캔을 비닐봉지에 잘 넣어놨지만 경찰이 사건을 조사해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직접 사건을 추리해가던 주인공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흘린 커피캔으로 인해 진범이 잡힐 수 있었던 이야기로 흘러가며 결국 죄를 짓고는 살 수 없다는 통쾌함을 담은 '버리지 말아 줘'
사고가 났고 운전자가 자신이 한 일임을 자백했지만 현장에 남은 증거와 갑자기 나타난 증언자로 인해 의아함을 느꼈던 조사관은 사건을 조사하며 핸들의 운전 미숙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임을 알게 되면서 사건이 전말이 드러난 '거울 속에서'
여섯 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고 유발자들은 안이하고 뻔뻔한 운전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내가 당하면 억울하지만 그 일을 내가 했을 땐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합리화를 부여하는 인간의 뻔뻔함을 담고 있기에 운전을 하는 사람들에겐 더 많은 공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상대방의 안이함 때문에 덧없는 죽음을 맞이한 등장 인물들에게 때론 통쾌한 복수를 날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후련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편리함만큼 찰나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운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경각심 또한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라 흥미로움만큼이나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