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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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 최후의 만찬 / 서철원 장편소설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회의적인지라 종교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일 때가 많은데 그래서 종교와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를 접할 때마다 왠지 모를 부담감에 피해지기 일쑤였었다. 그럼에도 <최후의 만찬>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기보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와 정약용, 그 시대의 큰 사건이었던 천주교 박해 사건을 다루었다는데 있었다.

역사 앞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지만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정조와 함께 조선을 이끌었던 인물로 떠오르는 정약용이 살았던 그 시대에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궁금해지곤한다. 그럼에도 역시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역사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 한번쯤 되짚고 싶었던 듯하다.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버렸다는 이유로 유교 이념에 위배됐다하여 고문 후 완산벌 풍남문 앞에서 처형당한 권상연과 윤지충, 유교사상을 받드는 양반들 눈엔 그것이 처형이었으며 천주교 신자들의 눈엔 순교였으니 권상연과 윤지충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선으로 인해 시작부터 꽤 무겁게 전개된다.

남인 계통의 체재공을 중심으로 한 신서파와 이에 반대하는 공서파의 대립은 천주교를 두고 불이 붙었으니 조선의 큰 그림을 그리던 정조의 눈엔 근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곁에 두고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임금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끝으로 더이상 탄압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지만 조선의 유교이념을 뒤흔드는 천주교의 사상은 백성들 사이에 등불처럼 번져나가게 되고 이에 천주교는 더욱 잔인한 양상을 띄며 탄압받게 된다.

그러던 중 사헌부 감찰어사인 최무영이 윤지충의 집에서 발견한 13인의 만찬 그림을 정조에게 보고하게 되고 정조는 그림에서 묘한 기운을 느껴 급기야 도화서 김홍도를 이탈리아로 보내 그림에 대해 조사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최후의 만찬 그림의 진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데 조선 초 미천한 신분임에도 엄청난 발명품들을 탄생시킨 인물이지만 생몰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지 않고 더욱이 그가 이룩했던 업적 뒤에 기록이 전혀 없다는 미스테리함이 최후의 만찬 그림과 연결되는 엄청난 전개를 마주하게 된다.

유학과 천주교, 그 속에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정조와 그의 개혁에 동조했던 인물들의 비탄이 '그럴수도 있었겠구나'란 관점으로 다가와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종교적 문제의 이면을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얼마전까지 제사 앞에서 가만히 두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에 대해 나도 모르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윤지충과 권상연의 말처럼 죽은 자를 섬기고 죽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보다 사람은 살아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도록 돕는게 나라의 근본이라는 말이 꽤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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