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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평점 :
황금가지 / 탐정 전일도 사건집 / 한켠 지음
의뢰비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생계형 탐정 전.일.도!
고려말 왕씨성을 가진 왕족이 입을 화를 피해 전씨 성으로 바꾸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믿거나 말거나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일도의 집안은 할아버지대부터 대대로 탐정 집안이었다. 전쟁 이후 파탄 난 경제를 급격하게 성장시키며 중동으로 해외로 돈을 벌러간 남편, 먹고 살만해져서 관심사가 남의 것?에 쏠린 바람기를 잡는 불륜탐정으로 일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으면서 일도에겐 미리부터 다른 꿈은 없었더랬다.
그렇게 머리는 좋지만 공부는 안해 고졸 출신인 20대 탐정 전일도가 그리는 좌충우돌 탐정일지 <탐정 전일도 사건집>, 처음 제목을 접할때만해도 발랄해 보이는 표지 그림보다는 왠지 암흑가의 어마무시함이 담겨 있을것만 같아 나름 긴장을 했었는데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부터 '으잉? 이거 너무 발랄하잖아?' 싶었더랬다.
그동안 접했던 탐정 소설에 젖어 있던 탓인지 치정과 관련된 살인이나 상대방을 납치해서 가학적으로 즐기는 사이코 같은 인물은 등장하지 않지만 나름 피부로 와닿는 현실감에 웃기면서도 사회 비판적인 뼈있는 이야기에 나름 신파스러운 면도 녹아있어 탐정이 이렇게 친밀하게 다가올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팍팍 들게됐다.
<탐정 전일도 사건집>엔 9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결혼정보 앱을 통해 알게된 상대와 집을 마련하기 위해 위장 결혼하려는 사연을 담은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 젊은 시절 못가본 곳을 여행하기 위해 집을 내놓은 할아버지가 당한 사기를 다룬 '헬로, 욜로', 그 이야기와 연결되며 갭투자와 아이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주부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들은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자라서, 언제 결혼할지 몰라서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남자사원에게 치이며 어차피 결혼하지 못할거 그동안 자신이 낸 축의금을 받아 산티아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직장인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비혼식', 그 이야기와 연결되며 사회적 구조조정을 당해야만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퇴사 혹은 무단결근', 연예인을 꿈꾸었지만 기획사는 공중에 떠버렸고 아이돌로 데뷔하기엔 나이가 너무 먹은, 자신을 실종시키고 싶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누구든 실종시켜 드립니다', 잘나가는 웹툰 작가가 표절 의혹에 담긴 미투 이야기 '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 중 2 여학생의 자살과 그것때문에 괴로워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 일도 아니야', 명문대 나오고 스펙 빵빵하게 갖췄지만 취업이 안돼 해외연수까지 다녀왔지만 부모 등골만 빼먹는 자식의 이야기를 그린 '우리들의 미래' 그리고 약간의 번외편인 듯한 느낌이 드는 전일도 가족의 족보와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용꿈이면 면천이라'가 실려 있다.
경찰 사건에 넘기기엔 사건이 커질 것 같고 비싼 의뢰비를 주며 의뢰하기엔 돈이 아까운 자잘한 사건들을 맡게된 '전일도', 잔인하게 살해되고 끔찍한 반전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혼, 육아, 사교육, 비혼주의, 왕따, 취업, 미투 등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고도 현실감있게 담아내고 있어 살인사건보다 더한 공포와 무기력감을 체험할 수 있다.
헬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과없이 비추면서도 등장하는 인물들 입장을 잘 표현함은 물론 쉴새 없이 이어지는 드립에 현실을 향한 비탄감이 유쾌하게 이어지기도하는데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것처럼 나는 전일도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에 백만표를 던지는 사람이라 슬픈데 웃겨 뒤로 넘어가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전일도를 빠른 시일내에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