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결혼 제도를 소설로 옮겨낸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란 소설을 읽고 팬이 되버린 '가키야 미우', 다작으로 독자들을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한결같이 반갑게 맞게 되는건 그녀의 작품에서 한번도 실망을 느껴보지 못해서인 것 같다.
<여자들의 피난소>는 갑작스럽게 닥친 지진으로 인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던 동일본 대지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진의 여파로 쓰나미가 덮쳐 자동차와 집이 떠내려가는 처참한 모습을 넋을 놓고 보았던 기억이 선명한데 충격적인 재앙이었던만큼 최근 몇년간 일본 소설속 주제로도 자주 등장하는지라 동일본 대지진은 자연의 거대함 앞에 인간의 나약함, 인간적인 상실성을 담은 이야기로 가득한데 반해 이 책은 그 속에서 여성의 인권을 다루고 있어 역시 '가키야 미우'란 생각이 들었다.
무능한 남편을 둔 덕에 억척스럽게 사는 50대 주부 '쓰바키하라 후쿠코', 남편과의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40대 '야마노 나기사', 6개월 아이를 둔 20대 '우루시야마 도오노',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해일을 만나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한 이들을 기다리는 더 큰 난관이 있었으니 그녀들로선 목숨을 걸고 오게 된 피난소에서 자신들이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이 남자일 것이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20대인 도오노를 향한 남성들의 야릇한 눈빛과 해일로 남편을 잃은 와중에 시아주버니와 결혼하라는 시아버지의 발언 등은 아무리 재난을 당했다고는하나 몇백년을 거슬러 올라간 발상에서 벗어나지 않아 순간 잘못 읽은 것인가라는 착각마저 들게 된다.
순식간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고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피난소 생활에서, 지금껏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였던 나는 같은 여자로서 남성들이 느낄 신체적 불편함보다 여성들이 느낄 불편함이 더욱 크리란 생각만 했었는데 소설을 읽으며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와중에도 성적인 본능에 충실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지라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충격과 함께 엄청난 상실감마저 느껴져 소설을 읽는내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피부로 와닿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해서 가키야 미우의 소설을 읽으면 우픈 상황이 많이 생기곤하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 다르게 이 소설은 우프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던지라 사실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