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라는 제목이 기묘한 느낌을 주면서 '잔다르크'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던 염기원 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 언뜻 제목이 주는 기묘함 때문에 추리소설이나 혹은 SF 소설인걸까? 싶은 호기심도 생겼는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주인공인 '사이안'의 인생을 통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짠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당연히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엄청날 정도로 무기력하거나 무겁지 않은, 딱 적당한 정도의 소설인 느낌이라 열정에 불타올랐다 어느새 불꽃이 사그라든 채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적당히 체념한 사회상과 그 모습을 잘 담아낸 느낌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사이안'을 중심으로 그녀의 가족과 그녀의 학창시절, 졸업 후 겪게되는 사회생활을 보여주며 현재와 과거의 회상을 오고간다.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는 IMF 때문에 자살했고 졸지에 시댁에 서방 잡아먹을 년이 되버린 엄마는 단기간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 술에 쩔어 삶을 놓아버린 엄마가 지겨운 이안은 엄마에게 살갑게 술을 권하는 대신 아버지가 남긴 보험으로 한번의 재수를 딛고 대학에 진학 후 생활비를 따박따박 엄마에게 받으며 꽃다운 젊음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삶을 보내기 바쁘다. 그런 생활이 한계치에 부딪힐 무렵 엄마가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단정한 옷을 입은 후 화장품 사업을 해보겠다고하는 중에도 이안은 엄마의 삶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빚쟁이들이 몰려와 엄마가 다단계를 했음을 알게 되었고 잠시만 외가에 가 있겠다던 엄마는 외할머니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이안, 2002 월드컵이 맺어준 남자친구 강영민의 도움으로 장례식을 무사히 치르고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나와 혼자 살 오피스텔을 알아보면서도 엄마의 죽음이란 충격보다 그와 함께할 달콤함에 젖어있는 이안의 모습은 거부감과 못된 아이라는 인상보다 그 자체가 지극히 담담하고 일상적이라는 공감이 형성돼 왠지 모를 묘한 느낌이 더 배가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회로 나온 이안은 구로디지탈단지의 IT 업계에 다니며 커리어를 쌓지만 여성이 겪는, 노동자가 겪어내야하는 문제들로 인해 노조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너무나 현실성 있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노동자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격한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다르지 않은 약자들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잔다르크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