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에도, 지금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강간 사건,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예전에 비해 범인을 잡는 일이 진보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미제로 남는 사건들이 많다는 사실엔 놀라움이 앞선다. 그리고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강간 신고 후 피해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슷한 동향을 보이는 것 같다.
몇년 전 등교하던 초등학생을 끔찍하게 성폭행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힘없는 어린 아이를 성폭행했다는 사실도 경악스러웠지만 자신의 DNA를 없애고자 아이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피해자는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수술을 감행해야했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과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평생 그러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더해 범죄자를 잡아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수술 후 앉아있기도 힘든 몸으로 재판에 참여해 증언을 했었다는 사실은 끔찍한 사건만큼이나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했었다.
그리고 여기 그만큼이나 경악스럽게 다가오는 강간 사건이 있다.
어린시절 부모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스무곳이나 되는 위탁장소를 전전해야했던 '마리'는 이제 겨우 독립해 혼자만의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지 않은 학대를 당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에 벅차 있었던 마리는 잠든시간에 침입한 범죄자에게 재갈을 물린 채 그가 시키는 포즈를 취하며 네시간이 넘게 강간을 당했다. 하지만 이어 출동한 경찰관들은 마리의 오락가락하는 진술 앞에서 강간을 당한게 맞냐는 의심을 내놓게 되고 끔찍한 강간을 당했음에도 마리는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진술하기에 이른다. 만약 마리의 진술을 들었던 형사라면, 이 책을 보고 있는 독자라면 아마 똑같은 의심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의심을 하기 전 우리는 원하지 않은 강간사건의 피해자가 된 기분을 잘 모른다는 심각한 오류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강간사건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스트레스 때문에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지 않다는 점에서 강간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있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는 갤브레이스와 핸더샷, 버지스라는 형사가 비슷한 강간사건을 접하며 수사를 어떻게 진행해가는지, 피해자가 진술하는 방법은 어떠한지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키도 나이도 모두 다른 여성들이 당한 강간 사건은 그만큼 사건 신고 후 대처하는 방법도 달랐으니 같은 인물에게 당한 강간 사건이라도 이성적인 자세로 자신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해주는 피해자가 있는가하면 마리처럼 거짓이라고 이야기하는 피해자도 있어 강간사건 후의 피해자의 모범답안 같은 진술은 없다는걸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에서 전혀 원하지 않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의 사건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타인들, 이 책을 본다면 그동안 어느정도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을거라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였던 사람들이 조금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다가가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