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내가 어릴적 보았던 영화나 소설, 중학생이 알아야 할~, 고등학생이 알아야 할~ 단편집에 '버지니아 울프'가 꽤 자주 거론됐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정작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접해본 기억이 없어 이름은 낯설지 않지만 <3기니>라는 낯선 제목만큼이나 작가 또한 익숙치 않은 느낌이었다.
얼핏 제목만 들으면 SF가 연상되지만 '기니'는 영국의 옛날 금화식 표현이라한다. 금이 처음 주조될 때 원재료인 금을 아프리카에서 들여오면서 기니란 표기를 그대로 쓰면서 붙여진 것인데 모더니즘과 페미니즘하면 연상되는 버지니아 울프가 제목으로 3기니를 쓴 것은 영국과 그 기니란 표기를 그대로 쓴 식민지 아프리카, 내용에 언급되는 전쟁과 여성의 사회적 신분 등을 보면 너무도 쉽게 이해가 가진다.
최근에야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고 예전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졌다고는하지만 그럼에도 사회에서, 남자들의 두뇌 속 깊이 각인돼 있는 여성에 대한 시각은 얼마나 크게 바뀌었을까 반문해보게되는데 1930년대 이러한 글들을 써냈던 그녀의 글은 지금 읽어봐도 파격적이고 강단있다고 여겨지는만큼 그 시대에 이 글이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였을지, 그 반대로 어떤 야유와 질타를 받았을지 그저 대단하다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거려졌던 것 같다.
<3기니>는 초반부터 "당신 생각에 어떻게 해야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강렬한 글귀를 만나게 되는데 그 무엇으로도 답을 낼 수 없어 오랫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는 편지에는 그녀가 당시 처한 전쟁의 상황이 덤덤한듯 보이면서도 처절하고 냉담함, 무기력함 등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것이 염세주의자 작가들 문체에서 보이는 죽을만큼 무기력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색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1941년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 우즈 강에 투신 자살한 그녀의 비극적인 삶은 전쟁과 연결되는 시대를 생각하면 한순간 폐가 쪼그라드는 고통이 느껴지지만 여성의 부조리한 위치를 조목조목 반박하는듯한 강단있는 글귀에서는 그녀의 의외성을 발견하게 돼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