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kg도 안되는 가냘픈 102세 노파 '베르트', 그녀는 이웃집 '드 고르'를 총으로 쏘고 경찰과 대치중이다.
베르트는 왜 경찰과 대치중인 상황이 되었을까?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해 분노한 전남편을 응징한 '기메트'와 그의 연인 '로이'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달아나던 중 베르트의 이웃집 '드 고르'의 스포츠카를 훔치려던 커플을 발견하게되고 그들의 사연을 들은 후 자신의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돈과 필요물품까지 준비해 그들을 멀리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기메트 커플이 이웃집 스포츠카를 타고 달아날 수 있도록 드 고르를 총으로 쏘고 시간까지 번 베르트는 체포되는 과정에서도 경찰반장을 빡치게 만드는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 자체로도 험악한 아우라를 뽐내는 경찰반장을 눈앞에 둔 베르트, 왜 이웃집 사람을 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서 1914년이었던 베르트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프랑스 남동부의 생플루르 주변의 오베르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베르트,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탄생은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었고 뒤이어 등장한 1942년 과부가 된 베르트가 등장한다. 점령당한 마을에서 꼬마아이가 독일군에게 버릇없게 굴었다는 이유로 그들로부터 총에 맞게 되고 옆에 있던 동생의 자지러지는 비명을 막은 베르트는 그로 인해 독일군들의 눈에 들게 되고 얼마 후 독일군이 집에 들이닥친다. 자신을 지켜줄 남편도, 따뜻한 이웃의 도움도 요청할 수 없었던 베르트는 긴박한 상황에서 독일군에게 할머니의 독한 술을 권해 위기를 모면해보려하지만 술을 몇잔 걸친 독일군은 드디어 자신의 욕망을 베르트에게 분출하려한다. 험한 꼴을 보기 직전 베르트는 지하로 도망치게 되고 그곳에 있던 삽으로 독일군의 머리통을 내리쳐 죽인다. 죽은 독일군인과 그가 남긴 루거 총, 그렇게 베르트에게 뜻하지 않은 루거 총이 생기게 된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경찰서에 잡힌 베르트가 나치들이 가지고 있던 루거총을 왜 불법으로 소지하고 있느냐란 물음에 그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속에 루거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강간당할 위기에서 한 살인이 정당하지 못한 살인이란 경찰 반장의 물음에 경찰을 향한 당차고도 조소섞인 발언은 그 한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함에 내뱉는 발언 같아 후련하면서도 분노와 씁쓸한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처음엔 전쟁이란 화마가 여자에게 주는 잔혹성에 대한 이야기가 분노스럽게만 다가왔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남편이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녀가 살던 시대 억압받던 여성들의 참상을 여과없이 고발하는 내용이라 그저 흥미 위주로만 가볍게 읽어낼 소설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다소 유쾌하게도 다가왔지만 그 속에 담아낸 험난한 베르트의 일생은 그 무게만큼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처음 제목만 보고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책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듯한 흥미진진함은 물론 작가가 루거 총에 엄청난 깊이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오는 소설이라 다음번 소설도 고민없이 펼쳐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