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다》라는 주제로 모든 판사, 변호사, 형사, 시민의 필독서라고 지칭되는 <언페어>, 단순히 사법체계의 불평등이란 글을 보고 권력의 중심에서 행해지는 사법체계의 비리를 언뜻 떠올렸으나 책을 펼쳐 실제로 일어난 판례를 살펴보니 '데이비드 발다치'의 '괴물이라 불리 남자'가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란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수사, 판결, 처벌, 개혁이라는 주제로 피해자, 형사, 피의자, 검사, 배심원, 목격자, 전문가, 판사, 대중, 죄수의 관점에서 행해진 헛점들을 고집어내고 있다.
추운 1월 밤 집 밖에 세워둔 자신의 차에 물건을 가지러 가던 제리는 은행나무 사이 백발의 남자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 911에 신고한다. 칼이나 총에 맞은 흔적은 없었으나 머리부분에 약간의 출혈이 있어 뇌졸중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의료팀이나 경찰관은 그의 옷에 묻은 토사물을 통해 취객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비싼 시계와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으나 지갑이 없었던 탓에 그의 신원을 당장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이송된 뒤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취객으로 분류되어 8시간동안 방치되던 중 이상을 눈치 챈 의료진에 의해 뇌수술에 들어갔으나 다음날 사망했고 그가 미국에서 권위있는 신문사 가운데 한 곳에서 기자이자 편집자를 지낸 '데이비드 로젠바움'으로 밝혀진다. 사건의 정황을 살펴보자면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나간 데이비드를 두명의 범인이 파이프를 휘둘러 때린 후 지갑을 훔쳐 달아난 사건으로 그가 범죄를 당해 누워있던 당시 그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의료진은 그의 머리에 난 피와 상처를 보지 못했고 뇌손상으로 인한 구토로 인해 취객으로 오해받아 장장 8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방치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으로 단순히 취객이 아니라는 의심과 정황을 모든 단계에서 비켜간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타깝고 말도 안되는 사건은 데이비드에 그치지 않는다. 11살 소녀를 강간 후 칼로 27번이나 찌른 사건의 용의자로 잡힌 열아홉의 후안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항변했고 소녀가 살해되던 시간 후안은 엄마와 통화를 했던 등 알리바이가 있었지만 판사와 배심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는다. 소녀의 몸에서 나온 혈액이 후안의 혈액형과 다르다는 것이 의료진에 의해 의의로 제기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압과 비인권적인 수사과정에서 후안이 자백한 자백서로 인해 이 모든 무죄 증거와 정황은 유죄로 판결이 나기에 이르러 19년이란 세월을 후안은 교도소에서 썩어야했다. 당시 채취했던 DNA가 이후 십여년 후 일어난 살인사건 DNA와 동일하다는 것이 판명되면서 후안은 19년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후에 강압적인 수사에 의한 거짓 자백이었음이 밝혀지게 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압적인 수사나 회유로 인해 하지도 않은 범행을 인정하여 복역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밝혀진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나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원죄에 대한 비극적인 내용들이 간혹 일어나게 되는 사건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에도 말도 안되게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인 수사방식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인생을 허비해야하는 사례들을 통해 현 사법체계의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오판으로 인해 바로잡아야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인간이기에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힐 수 있지만 그것이 범죄와 연관되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연결되는지, 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관이나 그것을 토대로 법 앞에 서는 재판관이나 배심원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이야기 <언페어>, 지금까지 이뤄진 수 많은 원죄들이 헛된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법체계의 새로운 모색과 방향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