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말도 안되는 제목 때문에 왠지 오기가 생겼던 소설이다. 머릿속에서 더는 나올 것이 없을때까지 추리의 추리를 거듭해도 당최 해답을 모르겠기에 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이 말도 안되는 제목을 붙이며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 또한 궁금해서 당장 펼쳐들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소설임엔 확실한 듯하다.
책 속에 단편으로 등장하는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인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란 책으로 소설가로 정식 데뷔했다고하나 나는 이 책을 통해 '구라치 준'이란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한편의 내용이 아닌 6편의 단편의 다양성 때문인지 의외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었고 그 대상이 아무라도 상관없는 묻지마의 범행이 연속으로 일어나게 되고 빚에 허덕이다 동생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면전에서 호되게 거절당한 주인공은 묻지마 범죄를 이용해 동생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 ABC 살인이라는 절묘한 우연이 겹치며 주인공은 동생을 다음 묻지마 범인의 희생자로 끼워맞추려하지만 주인공의 예상을 깨고 동시다발인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게 된다. 딱히 추리랄 것도 없는 'ABC 살인'은 단순한 이야기같지만 아무 대상이나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오싹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사내 편애'는 회사내 모든 인사고과, 연봉의 반영이 사람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옮겨간 형태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의 오류로 특정 직원이 '마더컴'이라는 프로그램의 편애를 받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지연, 학연 등과 엮이지 않고 오로지 객관적인 회사생활이 반영되어 처리되는 방식의 효율성이 나쁘지 않지만 기계에 의해 평가받는 인간의 모습이 삭막하게 다가옴과 동시에 버그로 인해 특정 인간을 편애한다는 재미있는 발상이 겹쳐 미래사회의 모습을 풍자하면서도 우울하지 않고 코믹하게 다가왔고
'피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에서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은 시체 위에 놓여진 조각 케이크와 기묘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를 수사하던 형사가 느끼는 위화감을 나름대로 추리해나가는 방식으로 범인이 잡히지도, 그에 걸맞는 답도 없는 이야기지만 정황상 피해자를 쫓아다녔던 스토커인 남자의 행방을 추리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가 더욱 오싹하게 다가와 대놓고 무섭지는 않지만 그에 맞는 공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밤을 보는 고양이'는 대도시에 살던 주인공이 며칠간의 휴가를 내 시골 할머니댁에 내려가 있었던 며칠동안 한밤중 벽을 보며 꼼짝하지 않는 고양이를 의아하게 생각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건을 알게 되는 내용으로 이 소설을 읽은 후로 한밤 중 고양이가 아무것도 없는 한 지점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책의 제목인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점점 전세가 불리해진 태평양전쟁 말 터무니 없어 보이기까지한 프로젝트에 차출되어 실험실에서 8시간동안 오로지 페달만 밟는 연구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외부와 동떨어진 연구실에 주인공과 교대 후 야간에 페달을 밟던 병사가 후두부에 뾰족한 상처를 입고 죽은 사건으로 연구실에는 병사의 후두부를 강타할 뾰족한 물건, 심지어 사각형으로 된 모서리가 있는 물건조차 없는 연구실에서 뾰족한 것에 찔려 사망에 이르게 된 병사의 죽음을 파헤쳐가는 내용으로 공교롭게도 사걱형이라고는 두부밖에 없어 상사의 추리는 터무니 없는 실험이 1차로 성공하여 공간이 물리적으로 뒤바뀌게 되면서 병사가 죽게 되었다는 내용이지만 설마?하는 찰나 이성적인 이야기로 되돌아와 사실을 알 수 없고 영원히 알 수도 없는 이야기로 끝마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은 5년여의 시간을 들여 개발한 신소재를 본사 직원이 가져오기 위해 연구소에 들렀다가 벌어진 알 수 없는 범인 이야기로 본사 직원인 주인공이 아는 지인으로 탈바가지를 쓴 작고 왜소한 네코마루 선배가 등장해 범인 없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추리 초보인 나조차도 범인이 누구이며 대략 어떻게 흘러가는 내용인지 눈에 보이는터라 추리 소설 달인들이 읽으면 싱겁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왠지 네코마루 선배의 활약을 계속 보고 싶다는 바램이 생기는 작품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로 정식 작가로 등단했다고하니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도 얼른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강렬한 임팩트나 함정을 파놓고 독자들을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라기보다 인간 본성이 어디까지 무서울 수 있는지가 더 무섭게 다가오는 내용인데 비스무리한 단편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