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누구나 지우고 싶은 순간과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너무도 부끄러웠거나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기억이라면 그것을 지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이 스스로 그때의 기억을 지우며 정신착란증을 일으키는 사연을 보면서 기억과 망각의 힘이 인간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게 됐던 것 같다.
<너의 이야기>는 인간이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지우고 싶은 기억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신형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의 수복과 보수를 목적으로 개발된 나노 테크놀로지는 점차 가공의 기억을 생성하는 용도로 발전하여 추억을 지우거나 자신이 동경하던 기억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현재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있다. 기억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어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해주는 나노로봇인 '그린그린'이나 가공의 자녀를 제공하는 '엔젤', 가공의 결혼 생활을 제공하는 '허니문'등으로 나뉘며 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하는 '레테'나 삭제한 기억을 되살리는 '메멘토' 등이 존재한다.
필요에 의해 자신에게 필요한 가공의 기억을 받는 사람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여행을 하거나 즐거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런 기억을 사서 자신의 기억이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치히로'는 부모의 따스한 온기와 관심을 받지 못한채로 성장하게 된다. 여러명의 가상의 아내를 둔 아버지와 그와 대등하게 가사에 무관심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치히로는 늘 외롭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기만하다.
그렇게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나날 속에 치히로는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의 불우한 성장을 제거하기 위해 '레테'를 신청하지만 약을 복용한 후 자신이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해주는 '그린그린'을 복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가공 속 의자인 '나쓰나기 도카'와의 추억에 시달리게 된다.
늘 혼자였던 치히로에게 도카는 가족과 연인, 친구의 역할을 모두 충족해주는 의자로써 치히로가 꿈에 그리던 모습이었기에 판매 오류로 인해 다시 보내준 레떼를 선뜻 마실 수가 없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수도 없는 가공의 인물인 도카는 치히로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허상일 뿐이지만 늘 외로웠던 그에게 치히로의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는데...그러던 어느날 치히로는 자신이 기억하는 도카가 현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도카였고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치히로의 집에 수시로 방문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치히로의 행동에도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며 위로하는데.....
허상 속 기억 의자였던 도카는 과연 허상의 인물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치히로의 기억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삭막한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며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지만 미스터리한 내용과 미래의 모습이 이렇게 삭막하게 변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함께 들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