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정리되지 않은 역사 논쟁에서 왜곡과 날조로 일관하는 일본 정치인들과 달리 인간적인 면을 보이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했던 '아키히토' 일왕이 '헤이세이' 연호가 끝나는 4월 30일로 퇴위식을 진행하는 내용의 뉴스를 보면서 '헤이세이' 연호가 기억에 남았던 차에 <굿바이, 헤이세이>란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란 새 연호로 넘어가는 시점과 안락사의 합법화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은 이야기가 더욱 현대 사회의 모습을 잘 이끌어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면서 안락사란 주제로 익숙한 '미 비포 유'의 일본어 버전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남부러울 것 없는 소위 엄친아에서 한순간의 사고로 스스로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이 선택한 죽음과 달리 이 소설에 등장하는 '히토나리'는 신체적 장애나 사고 또는 정신적인, 그 어떠한 이유로도 죽음을 선택할만한 입장이 아니란 점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올해 29이 된 '히토나리'는 22살 때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젊은이를 상대로 쓴 논문이 동일본대지진과 맞물려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고 그 여파로 지금도 방송에 출연하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만화가로 유명세를 날리는 아버지를 둔 덕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의 작품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아이'는 그녀의 적극적인 구애로 몇년 째 동거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각자의 뚜렷한 선이 있으며 2년이 넘는 동거생활을 하면서도 체취나 체액이 섞이는 것을 싫어하는 히토나리의 성격 때문에 일반적인 관계와는 다른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그들의 불만 없는 삶에서 어느 날 히토나리가 갑자기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되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픈 곳이 이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일 또한 없는 그에게, 더군다나 한창 나이에 한참 잘나가고 있는 그의 입에서 얼토당토없는 안락사란 말이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안락사를 생각한다는 히토나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헤이세이'란 연호와 '히토나리'란 발음이 같아 헤이세이 연호가 끝나는 4월 30일을 기점으로 안락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 그런 히토나리의 생각게 아이는 그의 생각을 되돌리려는 행동을 보인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아닌, 조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범위가 아니었기에 '안락사'란 주제를 심도 있게,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 쓴 이야기에 더욱 현실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아직은 죽음을, 그것도 안락사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이가 들어 병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생활을 해나가는 상황에 부닥치면 나 또한 진지하게 안락사를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가볍게 읽고 넘어갈 소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안락사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과 나의 시선에서 그것을 재단하여 찬반 논쟁을 펼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되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