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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평점 :
알에이치코리아 /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2006년 문고판 출간 한 달 만에 100만부 이상 판매되어 영화화, 드라마화되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가 그때의 여운을 간직한 채 다시금 독자들 가슴을 두드렸다.
이미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다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음에도 여전히 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설레임과 궁금증은 변함없이 들게 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오래전 선보였던 작품임에도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쳤다면 그 궁금증은 몇배나 더 크게 다가오는데 잔잔한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바로 그랬던 것 같다.
무리하게 일하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두 아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던 어머니도 과로로 쓰러져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어머니가 일하던 일터에서 일을 시작한 '다케시마 츠요시', 그렇게 부모님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일하던 츠요시는 이삿짐 센터에서 무거운 짐을 들며 무리를 하는 바람에 몸이 망가지게 되고 급기야 일자리까지 잃게 된다. 자신과 다르게 공부를 잘하는 동생 '나오키'를 어떻게해서든 대학에 보내고 싶었던 츠요시는 몇해 전 이삿짐을 나르며 알게 되었던 부잣집을 털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나선다.
넓은 대지에 함께 살던 아들 내외가 분가하고 노부인 혼자 살던 것을 알고 있었던 츠요시는 몰래 창문으로 들어가 나오키를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발견하게 되지만 집으로 침입할 때 보았던 텐진 군밤을 동생이 좋아했다는 생각에 그것을 챙기며 잠시 티비를 보기 위해 쇼파에 앉아있다 노부인과 마주치게 되고 강도가 들었다며 소리를 지르는 노부인을 제지하다 드라이버로 노부인의 목을 찔러 죽이게 된다. 집에 침입하기 전에 전화를 통해 노부인이 없다고 확신하였지만 사건을 저지른 후 도망치던 츠요시는 허리통증이 재발하는 바람에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경찰관에게 체포되고 만다.
후로 츠요시는 15년 구형에 처해지게 되고 나오키는 형이 자신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처구니 없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 죄책감도 잠시 자신이 처해진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살인강도범의 동생이 버젓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어른들과 친구들, 아르바이트하던 곳에까지 알려져 점장이나 단골손님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나오키는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한편 감옥에 들어간 형은 한달에 한번씩 편지로 나오키에게 공부를 그만두지 말것과 대학에 꼭 가야한다는 말, 자신이 죽인 노부인 집에 찾아가 사죄를 해달라며 이야기하지만 나오키는 형으로 인해 학교와 직장, 음반을 낼 수 있었던 기회와 좋아하던 여자까지 포기하게 되면서 형의 편지를 피하게 된다.
그렇게 형의 편지를 피하던 나오키는 첫 직장에서 알게 된 '유미코'의 도움으로 한곁같이 동생을 생각하는 형을 보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지만 유미코와 결혼하여 낳은 미키가 놀이방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는 것을 알게 되자 아내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츠요시에게 절연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즈음 유미코와 미키가 자전거를 타고 은행에 다녀오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의 부모가 사죄하기 위해 집을 찾아오면서 나오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평소 범죄 스릴러라는 강력한 이야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강력한 범죄 소설이 아니더라도 가슴 깊이 느껴지는 감동이 있었기에 중간에 페이지를 덮을 수 없게 된다. 이미 초반에 츠요시가 저지른 사건 이후론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없음에도 감옥에 있는 츠요시의 편지와 형 때문에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나오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냉담하게 대하면 안된다는 양심의 잣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형제애를 느끼게 해줄 잔잔한 소설이라는 예상을 깨고 가해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그들의 생각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나오키의 모습, 이렇게 독하게,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끝나는건가 싶은 순간 마지막에 다가오는 츠요시와 나오키의 재회는 가슴 뭉클하게 다가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 그런 건 상상에 불과해.
인간이란 차별과 편견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