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 소녀
황희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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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픽션 / 내일이 없는 소녀 / 황희 장편소설


혼에 대한 소설은 일본소설에서 워낙 많이 접해왔고 '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일본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오히려 한국소설에 '혼'이란 주제가 낯설게 다가올 정도이다. 그런 느낌이 강했기에 '부유하는 혼'이란 소설을 읽기 전엔 사실 큰 기대치가 없었다. 물론 기존에 만나보지 못했던 작가님이었기에 비교할 것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읽게 되었던 '부유하는 혼'은 일본소설의 그것과는 차별화된 느낌으로, 혼에 대한 한국적인 이미지가 바로 이런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거운 주제였음에도 나름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됐던 소설이었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황희 작가님의 '부유하는 혼'이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었기에 <내일이 없는 소녀>가 더더욱 기대되었던 것 같다.

<내일이 없는 소녀>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용의 중심엔 '잔류사념'과 '평행세계'가 존재한다.

'잔류사념'이란 사람의 원한, 기억, 집착, 숙원, 슬픔 등의 강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채 어떤 장소나 물건, 살아있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여 있는 것을 일컫는다. 뭔가 얼핏보면 낯설게 다가오는 단어지만 사진이나 사물에 손을 올려놓으면 주인의 사념을 읽어내는 영화 속 사이코메트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이와 함께 등장하는 '평행세계'는 각각의 분기된 평행세계 속을 이야기하고 있어 처음 보는 공간, 장면 등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평행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 또한 영화 속 소재로 등장한 바 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성도착증 환자인 백만우에게 잔혹하게 유린당한 이도이, 학교 등교길에 술에 만취한 백만우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열여덞 살이 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도이의 사건은 '조현조 락스사건'으로 알려져 있어 사람들은 도이가 같은 인물이란걸 전혀 모른다. 하지만 도이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버거울만큼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며 틈만 나면 자해와 자살을 시도한다. 형사였던 아버지와 피아노학원 원장이었던 엄마의 삶은 이미 오래전 그날 산산조각났고 무거운 집안 공기로 인해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님과 어떻게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한 도이는 목줄을 매고 힘겨워하던 순간 눈앞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엄마와 얼굴에 자상을 당한 어린 소년을 보고 도망치라고 다급하게 외치는데....

도이의 아래층에 사는 지석, 도이에게 단하나밖에 없는 친구이며 아무도 모르는 도이의 비밀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어린시절 없어졌고 의붓아버지, 친형과 함께 살고 있다. 지석 또한 평범하며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지는 못했으니 서로의 아픈 삶을 자해를 통해 견뎌내는 지석과 도이.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 칼에 배인 자국이 가득인 석윤, 어릴 때 괴한의 침입으로 엄마는 살해당하고 자신은 얼굴에 끔찍한 자상을 입게 된 석윤은 일상적인 일 대신 문신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각각의 사연을 안은 도이와 지석, 석윤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에게 유린당한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저주받을 세상에서 겨우 숨만 토해내며 살아가고 있지만 삶에 대한 어떠한 감흥조차 없다.

그런 이들의 관계에서 전날 자살을 하려다 본 환영 때문에 소리를 질렀던 도이는 다음 날 전에 보지 못했던 미묘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친한척 다가오는 지석과 왠지 알듯말듯한 석윤, 그 속에서 도이는 자신이 본 잔류사념을 통해 일어났던 사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은 백만우를 만나기 전으로, 지석은 아버지의 학대를 받아 죽기 전으로, 석윤은 서진우란 괴물에게 얼굴 가득 남을 자상을 당하기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이는 각각의 장소로 이동하며 잔류사념과 접촉하면서 사건을 피해간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사건은 나를 피해갔을 뿐이지 또 다른 아픔으로 남아 잔인한 기억을 남기고 무언가에 이어졌던 도이와 지석, 석윤의 연결고리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내일이 없는 소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야기로 돌아와 읽는내내 감탄사를 연발하게 됐던 작품 <내일이 없는 소녀>, '황희'란 이름만으로 믿고 보는 작가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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