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리 잠자'의 일생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건드렸던 작품 <변신>으로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 사실 그의 글은 무겁고 난해하다. 심란할 때 읽으면 목구멍이 콱 막힌듯한 답답함이 배가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유명해서 오롯이 다 느껴지지는 않더라도 유명하다고하니, 내로라하는 분들이 극찬했던 작품이라하니 호기심에 펴보았다가는 망했다는 기분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가벼운 호기심으로 들춰봤더라도 읽은 후 뇌리에 강하게 남는 묵직함이 그가 주는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은 카프카의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판결 / 법 앞에 /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 시골 의사 /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 어느 개의 연구 / 굴이 그것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이게 무슨?'이란 질문들이 마구 떠오르게 된다.
'변신'과 마찬가지로 '판결'이란 작품에서도 서로에게 의지되지 않는 가족의 살풍경한 모습이 연출되는데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과 먼 타향에 있는 친구에게 약혼 소식을 전하는 아들의 편지는 급기야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번지게 되고 결국엔 집을 뛰쳐나간 아들이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까지 이르게되니 이미 이 작품을 읽어보았음에도 처음 읽는듯 낯설게 다가와 어리둥절한데 대부분의 카프카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비슷하다는 점도 내게는 매우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는 원숭이 시절의 삶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은 원숭이가 인간 사회에 적응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달아날 출구가 있었음에도 달아나지 않고 조용히 인간에게 잡혀 궤짝에 갇힌 자신의 신세에 순응하며 인간의 말을 따라하고 독한 술을 따라마시는 등 거친 자신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저항없이 그것을 따라 원숭이 본성을 잃어간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저항감 없이 인간을 따라했던 원숭이는 결국엔 인간의 모습이 될수도, 행복한 원숭이로 남을 수도 없는 이야기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아닌, 내 눈앞에 비친 재벌가의 모습을 쫓아 영혼을 파는 인간의 모습을 떠오르게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은 노래를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성량과 기교를 자랑하지 않는 요제피네에 매료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일제강점기 상황이 자꾸만 떠올랐는데 자주 등장하는 '우리 민족'이라는 단어 때문에도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카프카'가 살아갔던 시대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에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집안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는 소개가 괜한 말은 아닌 듯 싶다. 자본주의로 인한 가족간 적나라하면서도 불편한 감정과 사회의 부조리들만을 모은듯한 그의 소설이 그래서 꽤나 불편하고 답답하게 다가오지지만 그래서 더욱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