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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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감성 / 달나라로 간 소신 / 이낙진 지음


처음 책의 제목을 접하며 '달나라로 간 所信'을 '小臣'으로 잘못 해석하여 시대물과 SF가결합된 참신한 소설로 여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해석에 마냥 웃음이 나오긴하지만 아마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평생 잊어버리지 못하지 싶다.

이 책은 '기록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로 '이낙진',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대충 자신이 자라와던 생활과 현재의 모습을 담아내고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담담하게 기록해 낸 에세이라고하기에 이 책은 뭔가 많이 까발려(?)진 느낌이 없지 않다.

자신의 아내와 두 딸, 할머니와 집안 내력, 아내의 언니와 그 배우자들의 간단한 이력까지 모두 쏟아내는 글을 마주보면서 괜히 내가 더 '이렇게까지 다 오픈해도 되는거야?' 싶었더랬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기에 더 가감없이 들려주는 그의 인생이 더 진솔하게 다가와졌던게 아닐까 싶었다. 거짓과 가식으로 난무한 세상, 모르는 얼굴이 웃으며 다가오면 방어적인 자세부터 취하게되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글로써 오픈한 것이 어찌보면 대단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책은 크게 moderato(보통 빠르기), ritardando(점점 느리게), a temp(본래 빠르기)에 맞게 어린시절과 청춘, 현재의 모습을 각 리듬에 맞게 담아내고 있다. 기억에 많이 남았던 유년 시절, 다시 되돌릴 수 없어 다시금 손으로 잡고 싶은 시절은 느리게 잡아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고 자신의 청춘과 가족, 일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분류하여 담아내고 있어 이야기가 사뭇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한 독사 한마리를 잡아 땅꾼에게 50원에 팔았던 시골 아이들의 모습과 개구리를 구워 나눠먹던 시골 정경은 시골에서 자라 똑같은 경험을 하며 자랐던 나의 유년 시절과 맞물려 아련함으로 다가왔다. 시골이다보니 동네 언니, 오빠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놀며 나무 위에 밧줄을 얼기설기 이어놓은 곳을 아지트 삼아 어설픈 손으로 나무를 깍아 만든 총으로 아군, 적군 나눠 놀던 기억, 그러다 배가 고프면 찔레 줄기나 칡뿌리를 캐서 나눠먹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서도 한참동안 놀다 마당에 나와 동네가 떠나갈듯이 이름을 불러제끼던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때쯤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했던, 눈물나게 행복했던 어린시절이 기억만으로도 못내 아쉬워서 한참동안이나 그 기억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연애 시절이야 모두 다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시절이라해도 결혼해서도 연애시절처럼 배우자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기가 참 어려울텐데 배우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 두 딸에 대한 사랑 또한 글 속에 절절하게 배어 있어 왠지 모를 행복감이 느껴졌다. 3대 독자인 저자의 첫 딸을 보며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위로를 '삶의 밑천'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서는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 말이 너무 멋있게 다가와서 곱씹어보며 음미하게 되었고 잠들기 전에 딸들에게 들려주던 일토,이토..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양 한마리, 양 두마리의 색다른 버전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졌다.

누나를 더 예뻐했지만 철들고선 큰 돈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용돈도 찔러넣어주던 할머니의 맥박이 떨어지고 운명하셨다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는 얼마전에 폐암 판정을 받은 아버님이 떠올라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비슷비슷한 상황에 대한 제각각의 관점과 생각의 폭이 크다는 것과 그것을 언어로 절묘하게 옮기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기는하지만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왜이렇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서 읽었는지 모르겠다. 지루하고 더디게 읽혀졌던 것은 아니었는데 한꺼번에 읽어내리기가 아까워서 울적할 때,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던 것이 꽤 시간이 오래지나버렸는데도 읽을 때마다 진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생겨서 아련해졌다가도, 감정이 복받쳤다가도 했던 듯하다.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나의 기억을 끄집어 진하게 우려낼 수 있다는건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까, 작가가 뛰어나다는 의미인걸까, 잘 모르겠지만 에세이 읽다가 참 오랜만에 극과 극을 오갔던 것 같다.


가난하지만 추하지 않고, 공부가 크지 않지만 천하지 않고, 너그럽지는 못하더라도 협량치 않은 삶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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