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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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하 / 적의 벚꽃 / 왕딩궈 지음



이 책이 궁금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언급한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찬사에 있었다.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걸까 궁금해졌다.

카페가 들어서기 마땅치 않은 장소에 카페를 오픈한 주인공, 물론 찾아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재산도 많고 평소 선행으로 명망이 자자했던 '뤄이밍'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 후 집으로 돌아가 자살 기도를 하고 그의 딸 뤄바이슈가 카페에 들러 주인공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물어보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던 뤄이밍이 카페를 다녀간 후 자살을 시도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주인공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한두명뿐인 손님에도 이익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주인공. 오히려 그는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교통사고로 중증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학교의 허드렛일을 하는 힘없고 가난한 아버지, 그랬기에 즐거울 수 없으며 서글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채로 자란 주인공, 성인이 된 어느 날 비오는 캐노피 밖에 서 있던 그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캐노피의 작은 공간을 마련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던 추쯔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슬픈 기억의 보상을 받는 듯 새로운 인생으로 도약하게 되는 시작이 되었지만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은 백화점에서 산 주전자로 인해 비극으로 치닿게 된다. 주전자를 사며 경품이벤트에 당첨돼 받은 수동카메라로 사진찍는 것에 재미를 붙인 추쯔는 어느 날 무료로 사진 찍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듣게 되고 그렇게 '뤄이밍'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후 주인공과 추쯔는 뤄이밍이 사는 별장에 들러 사진찍는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되고 뤄이밍과 추쯔의 사진에 대한 열정 때문에 주인공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쌓이게 된다.

주인공은 일 때문에 추쯔를 홀로 남겨두고 출장을 가 있는 날이 많았고 생각지 않게 일이 빨리 끝나 집에 들렀던 날 추쯔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추쯔를 사랑했기에 더이상 묻지 않았던 주인공은 자신이 온 흔적을 되돌려놓으며 다시 공사중인 임대주택으로 돌아가고 다음번 방문에서 그동안 행하지 않았던 과격한 사랑의 행위에 놀란 추쯔는 집을 나가게 된다.

모든 것은 주전자를 사며 당첨된 카메라 때문이었다고하지만 카메라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주인공과 추쯔는 계속 행복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가난했기에 가난을 피하고자하는 욕망과 가난한 사람에게 사기에 가까운 짓을 하면서도 양심을 지키고 싶은 주인공의 양립적인 마음에서 인간적인 면과 그럼에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고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부와 가난, 양심을 어기고 싶지 않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주인공의 고민 속에서 충분히 추쯔를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간과하며 추쯔를 외롭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게 과연 주전자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딱히 해답을 내릴 순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어린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어느 순간 뤄바이슈에게 이야기하듯 흘러가는데 글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추쯔의 절절한 묘사가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묘하게 엄청난 분노감이나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고 눈물이 차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절제된 문장으로 다가와 눈물로 흘러내리지 못한 먹먹함이 더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물렀던 작품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나서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을때처럼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느낌이 이 책에서도 느껴져 꽤 매력적이고도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빠의 일생을 그 사진 두 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벚꽃이 있던 때와 벚꽃이 사라진 뒤, 사진을 두고 온 건 그걸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지 동정을 바라서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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