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꿈꾸는 삶의 풍경이 열리는 곳
곽재구 글 / 해냄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냄 / 곽재구의 포구기행 / 곽재구

서해에 해가 지는 모습은 아름답다. 넓은 개펄이 있고, 아득히 퍼져나가는 갯내음이 있고, 바닷새들의 끼룩거리는 울음소리가 있다. 배들이 하나둘 항구로 돌아오고 불빛들이 바닷가 여기저기서 빛나기 시작한다.


내가 자랐던 섬의 해지는 풍경을 보며 느꼈던게 바로 이러했던 것 같다.

부두에서 배가 출발할 때 느껴지는 묘한 설레임과 몇 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하게 될 섬이 보이기 시작할 때 콩닥거리는 두근거림, 이윽고 선착장에 발을 내딛을 때의 안도감과 변함없는 풍경에서 오는 안정감 뒤로 역시 변하지 않음에서 오는 쓸쓸함과 심심한 감정이 내가 선착장에 발을 디딜때마다 동일하게 느꼈던 감정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 삶의 터전이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정겨움과 함께 이방인에 대한 약간의 경계감도 있는 것이 섬사람들이 가지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로 둘러싸여 그것을 밥먹듯이 쳐다보고 사는 섬사람들에게 바다의 풍경은 감탄스럽지도, 경이롭지도 않다. 도시 사람들의 치열함과 또 다른 신체적 고됨 속에서 살아가는 섬사람들에게 바다의 풍경은 새삼스러울 것도, 설레일 것도 없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태어나 바다에 대한 달뜬 환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매일 눈만 뜨면 그자리에 있는 바다를 보는 것이 부럽게 여겨질지 모른다. 파란 바다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을 보면서, 한낮의 태양빛을 받아 은색의 눈부심을 발하는 바다를 보노라면 저절로 시인이 되지 않겠냐는 우스개 소리도 던진다.

삶에 대한 답답함과 피폐해진 내 자신을 보듬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루 이틀, 한달정도는 이대로 평생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섬에 살다보면 뭔가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과 무력감, 따분함에 다시 뭍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을 수 없이 봐왔다. 그런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 포구기행을 접했을 때 포구만 골라 여행을 다니는 작가님이 참 신기하고 재밌게 다가왔다. '그 속에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매일 보며 무료하고 식상하게 느꼈던 것에서 작가님은 어떤 것을 보고 느기셨을까?' 조금은 궁금하기도하고 조금은 왠지 모를 오기도 발동하여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에 <곽재구의 신 포구기행>을 통해 이 책을 처음 접했었다. 읽기 시작하며 나도 모르게 포구에 대한 반발과 저항력에 적잖이 당황하며 읽게 되었는데 책을 덮을 때 그런 나의 반발감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던 어린시절 기억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막상 읽을 땐 몰랐지만 읽고나니 글 속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에 속이 후련하다는 생각들이 들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저항감 없이 아주 편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신 포구기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긍정적인 호기심과 반발심에 따라가지 못했던 작가님의 보폭을 이번 책에서는 얼추 맞추며 걸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작가님이 바라보았던 풍경을 따라가며 글을 쫓아 함께 동행하는 길이 어떤 날은 즐거움으로 어떤 날은 즐겁고 센치함으로 어떤 날은 삶에 대한 먹먹함으로 물들어갔다.

 

 

'긴 봄날'이란 뜻의 춘장대와 오른발로 갯벌을 차며 널을 타는 어머니들의 고된 작업과 뱃전에서 멸치를 터는 진풍경과 그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과 갈매기떼, 댕강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의 처절함과 숭고함, 공룡의 발자국과 해가 바다 너머로 기울고 찰나에 포착할 수 있는 푸른빛을 보았을 때의 가슴 벅참과 낯설지만 마음은 편안한 포구 어귀의 그 어딘가 조용히 빛을 발하는 가로등을 보게 되면 나는 <곽재구의 포구기행>이 떠오르리라.

카메라 플래시에 쌍욕을 하는 아주머니의 앙칼짐과 다방 난롯가 주변에서 언 손을 녹이는 어부들의 모습과 어둑한 길 혼자 있는 나그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밥한끼 대접해주는 후한 정이 있는 마을의 정경이 삶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언젠가 여행하게 될 포구에서 누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면, 포구에 하릴없이 오랫동안 앉아있는 이가 있다면, 아무 근심걱정 없는 듯 해변에 누워 책을 읽는 이를 보게된다면 아마 포구기행을 쓰신 곽재구님이 아닐까 싶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