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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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의책 / 막차의 신 / 아가와 다이주


친구와 신나게 놀다 막차가 끊길때서야 겨우 시간에 맞춰 전철에 몸을 실었던 날, 막차니까 앉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깨고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 내릴 때까지 서서갔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날 앉아갔더라면 꾸벅꾸벅 조느라 사람들 모습을 몰래 엿보는 일은 없었을텐데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아 서있느라 유리창에 비친 사람들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 사람의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겠구나란 나 혼자만의 상상을 부여하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이 책의 제목을 접하는 순간 되살아나 강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막차의 신>에는 7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일면식은 없지만 사고로 정차한 막차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거리는 의외의 반전으로도, 슬픈 이야기로도, 피로에 찌든 일상에 대한 공감으로도 다가와 등장하는 이야기마다 지루할 틈 없이 읽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막차 안에는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열차를 탄 샐러리맨도 있을 것이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 삼매경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아가씨도 있을 것이다. 직장 동료나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 집에 돌아가야한다는 회귀 본능에 어쩔 수 없이 쓴 술잔을 밀어내고 열차에 오른 중년 아저씨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그들의 하루 속에서 누군가는 아내의 잔소리를 어떻게 모면하나 머리를 굴리기도하고 아침에 싸운 엄마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하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그들의 하루를 통해 나의 하루와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되는 의외의 발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늦은 밤 힘겹게 몸을 실은 열차 안, 마음대로 숨을 쉬기에도 어려울만큼 사람들로 둘러쌓여 있는 열차는 갑작스럽게 정차하게 되고 곧이어 도착하게 될 역에 인사사고가 발생하여 정차하였다는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언제 다시 열차가 움직이게 될지 모를 답답한 시간에 놓이게 된 사람들, 그 속에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기분 나쁠 정도로 음흉한 웃음을 보이는 한 남성, 정차된 열차 안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남성은 조금씩 여성의 몸에 자신의 신체를 밀착하고 기분 나쁘게 다가와 몸서리치는 이야기는 기분 좋은 한방으로 독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파우치', 매일밤 프로젝트에 시달리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끝내지도 못할 프로젝트를 떠안아 사장님과의 대면에서 담판을 지으려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회사 사정에 대해 알게 된 날 어차피 끝내지 못할 프로젝트지만 이대로라면 정신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어 하루의 휴가를 안고 마지막 피크를 올리며 퇴근한 가타야마가 막차로 인해 집까지 걸어가게 되면서 우연찮게 경험한 일을 소소하게 그리고 있는 '브레이크 포인트', 오랜 연애를 했고 아직도 좋아하지만 상대방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란 무거운 고민을 안고 사는 가즈미의 연애에 대한 달달함을 볼 수 있었던 '운동 바보', 평생을 미용사로 일하던 아버지의 임종에서 자신과 같은 길을 가기를 바래 무리하면서까지 아들을 미용학교에 보냈지만 현재는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아들이 우연히 들렀던 선술집에서 만난 사람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자리에서 다부진 결의를 다지는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 불운했던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어머니와 그 후 전철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이 후 평탄치 않게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파트너의 실수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아 파트너는 결국 전철에 몸을 던지고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고가 밑의 다쓰코', 의도적으로 학교 땡땡이를 치며 남자애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지만 딱히 힘들어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유일하게 좋아하던 것이 그림이었고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학교 땡땡이를 치고 학교 근처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꼬마 아이가 손에서 놓친 빨간 풍선을 보고 빨간색을 찾다 자신의 피로 그림을 그리려던 것이 손목을 잘못 긋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가는 소동으로 번지고 그 이야기가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애에게 들어가 학교를 계속 빠지게 되면서 오히려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담은 이야기 '빨간 물감', 자신에게 새 생명이 깃든 것을 안 날 누군가가 등을 밀치는 바람에 선로에 떨어진 주인공은 어떤 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목소리만 기억할 뿐 생김새나 인상착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이 떨어졌던 선로의 매점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며 혹시나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안고 있지만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며 폐점이 결정되고 매점에서의 마지막 날 주인공은 자신을 구해주었던 은인을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크린도어'

전철 안에서 풍기는 사람들의 인상과 이미지는 비슷한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읽고 있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었던 <막차의 신>, 힘든 하루와 정신적인 여유없이 살아가며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공간에서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와진 것 같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평범한 전철에 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전철 안에서 개성을 죽이고,

사람 형상을 한 물체처럼 그저 조용히 쳐박혀서 실려 간다.

그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는 제각각 그 사람다운 다른 일을 한다.

전철 안에서는 누구나 엇비슷한 부피를 차지하는 '승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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